길마다 서린 가르침…나의 발길 이끄네
  • 경북도민일보
길마다 서린 가르침…나의 발길 이끄네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07.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 명소 - 경주 감포 가는 길
 
황룡골 골짜기는 깊다. 여름 빛이 물드는 산천도 산천이지만 고개 고개 넘어가는 그 길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아스라함도 일품이다.
마치 용이 솟아오를 것 같은 용소를 지나 내려가자 기림사다.
함월산 자락의 기림사. “달을 머금었다가 토한다”는 뜻을 지닌 기림사는 해방 전만 하더라도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만큼 위세가 당당했었다.
기림사는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직후인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의 승려 광유(光有)가 500여 명의 제자들을 교화한 뒤 창건한 후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원효가 중창하여 머물면서 기림사로 개창 하였다.
 
 
하늘빛과 녹음 어우러진 기림사의 아늑함에 발길 잡히고
 
 
 
 기림사의 여름 하루는 이 곳을 찾은 사람의 손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하늘빛과 녹음이 어우러져 기림사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이 아늑함마저 들게 하기 때문이다.
 풍경소리가 들린다. 기림사의 풍경소리가 좋아 십수년째 이 절을 찾는 이도 있다 하니 이 또한 기림사의 숨겨진 매력일듯하다.
 절은 대적광전을 중심에 두고 약사전, 웅진전, 진남루가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과 새로이 조성한 석등이 눈길을 머물게 한다.
 그리고 발길을 산신각쪽으로 돌리면 아늑한 길을 따라 갈수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월당 김시습을 모신 영당이 보이는데 그 앞에 매월당의 시 한편이 쓰여져 있다.
 “잠시 개었다가 다시 비오고 비오다가 다시 개인다/ 하늘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랴/ 칭찬을 하다가도 오히려 나를 헐뜯고/ 명예를 피한다더니 오히려 이름을 구한다네.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어이 관계하며/ 구름이 가고 구름이 온들 산이 어이 다투리 /세상 사람들 잘 기억하시게/ 어디서나 기뻐함은 평생에 득이 된다네.”
 
 
 
골굴사 스님들의 우렁찬 기행소리 번뇌를 깨트리네  
 
 함월산에서 발길을 돌려 고갯마루로 다시 발길을 돌리다 보면 감은사지 표지판이 보인다.
 웅장한 사찰을 기대하고 감은사지를 찾으면 어김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천여년 전 이 감은사에는 수많은 스님들이 기거하였을 것이고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 장엄한 석탑을 돌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탑 두 개와 금당터에 남겨진 절의 흔적들 그리고 태극문양의 석재물 몇 점.
 살아생전에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여 직접 대왕암의 위치를 잡았다.
 문무왕은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용당산 자락의 용담 위쪽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절을 다 짓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신문왕이 문무왕의 뜻을 이어 받아 그 이듬해(682년)에 절을 완성한 후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고 하였다.
 감은사지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면 눈길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자리잡은 두개의 탑 쪽으로 향한다.  
 
 
천년세월 자리잡은 삼층석탑에 심호흡 한번  
  높이가 13.4m이며 동서 쌍 탑으로 조성되어 있는 신라 최대의 석탑인 감은사지 삼층석탑(국보 112호).
 탑은 천년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들어 왔을터이다.
 깊은 심호흡을 한번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름을 경험하게 된다.
 길은 대종이 묻혔다는 대종천을 따라 감포바다로 이어진다.
 토함산의 물줄기와 함월산의 물줄기가 만나서 동해로 접어드는 대종천은 문무왕의 숨결이 살아있기도 하지만 또 하나 숨겨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고려 고종 25년 몽고군이 침략해 왔을 때 황룡사 9층탑을 비롯 수 많은 문화재들이 불에 타고 말았다.
 당시 황룡사에는 경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에밀레 종보다 네배가 더 큰 종이 있었다.
 그 종은 몽고군이 대종천으로 해서 가져가려다 폭풍우를 만나 그 종은 가라앉고 말았다.
 그래서 그 하천을 큰 종이 지나간 하천이라고 해서 대종천이라고 이름 붙였고 그 뒤로도 풍랑이 심하게 일면 그 종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해진다.
 
 
문무대왕 수중릉의 기세에 초연함 얻어
 
 
 
 대종천 물길을 끼고 고갯마루를 넘어가게 되면 순간 눈앞에 아찔한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감포 앞바다에는 바람이 불고 파도는 부는 바람소리에 덩달아 철썩거리고 문무대왕 수중릉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왕암이 마치 섬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문무왕은 오늘날의 심각한 묘지 난을 예상했었는지도 모른다.
 문무왕은 “이 때까지 우리 강토는 삼국으로 나누어져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합되어 한 나라가 되었으니 민생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테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화려한 능묘는 공연한 재물의 낭비며, 인력을 수고롭게 할 뿐 죽은 혼(魂)은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숨을 거둔 열흘 뒤에는 불로 태워 장사 할 것이요. 초상 치르는 절차는 힘써 검소와 절약을 쫓아라” 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산에서 시작된 발길은 바다에서 끝이 난다.
 생(生)의 감각을 찾기 위한 여정 또한 사(死)의 초연함에 이른다.
 얻기위해 시작된 발길이 버림을 통해 다시 얻을수 있는 기회가 되는 감포 여행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바라 본 대종천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점에는 수백마리의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정종우기자 jjon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