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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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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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창
▲ 이철우 작가

몹시 무덥던 어느 해 여름, 때 이르게 장마가 시작되어 대낮인데도 한적한 국도는 저녁켠처럼 어두웠고 굵은 장대비가 차창을 후려치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억수같이 쏟아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는데 뒤따라오던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추월해 지나갔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한잔을 마시고 20여분쯤 더 달렸을까! 모퉁이를 돌자 우의를 입은 경찰이 신호봉을 다급히 흔들며 정지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두 줄의 노란 황색선, 그 너머로 중앙선을 침범해 충돌한 으깨진 자동차가 하얀 체열을 뭉실뭉실 내뿜고 있었다.
 틀림없이 내 차를 추월해갔던 그 자동차였다. 빗길에 미끄러져 마주오던 차와 충돌한 것이었다.
 일순간에 경계선을 넘은 운전자는 돌아올 수 없는 생사의 경계도 함께 넘고 말았다.
 천둥소리와 함께 경광음 소리 숨 가쁘게 울리고 굵은 빗줄기는 쏟아져 아스팔트위로 핏물이 쓸려 가는데 뒷좌석에서 빠져나온 젊은 여자가 운전자의 시신 앞에 허물어져내려 구급대원의 손을 뿌리치며 울부짖는다.
 선은 그어 놓은 금이나 줄로서  경계, 영역, 소유 등을 구별하는 2차원적 라인(line)이다.
 한강 어귀 교동도에서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에 이르는 250km의 휴전선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조밀하게 많은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억압과 핍박의 대명사가 된 북한이고 반대편은 풍요와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이다.
 선 하나를 두고 극명히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속에도 넘어서는 안되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남자 친구를 만나더라도 일정한 선을 긋고 만난다”고 할 때의 선의 의미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일정한 한계를 뜻한다.

 다툼이나 관계단절은 대개 이 선을 넘게 될 때 발생한다.
 물체가 외부에서 힘을 받게 되면 변형이 발생하고 그 힘을 제거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만 그 한계를 넘게 되면 가해진 힘을 제거해도 영구적으로 변형된 채로 남게 된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도 말이나 행동이 어느 선을 넘게 되면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화가 나고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사회유명 인사들 중에 한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정직과 부정이라는 선을 넘어 일평생 쌓은 공덕을 재로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소한 부부싸움에서 도를 넘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허다한가!
 법과 정의에서는 그 경계가 대부분 명확하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넘지 말아야 될 선의 경계는 일정하지 않다.
 사람마다 포용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이 가장 아파하고 분노하는지 가까운 관계일수록 잘 알고 있으므로 묵시적으로 모든 사람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도로에 나가 차선을 지키지 않고 지그재그로 운전해보라.
 몇 백 미터를 못가 사고가 나고 말 것이다.
 인생사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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