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경,신라유산 가능성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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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경,신라유산 가능성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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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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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석가탑 발견유물조사 중간 보고’
고려초기 석가탑 중수될 무렵 문서 3번 출현

 
 
묵서지편 판독에 참여한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주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묵서지편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현존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 중 하나로 거론되는 불국사 석가탑 사리공 내 발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무구정경)은 고려초기에 석가탑이 중수될 때 새로 만들어 납입되었을 가능성도 내치기는 힘들지만, 교과서적 통설처럼 통일신라시대 유산일 가능성이 한층 높다는 조사성과가 제출됐다.
 석가탑 출토 문서뭉치인 묵서류 문서 판독을 진행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은 27일 박물관 소강당에서 석가탑 묵서지편 문서류 판독결과를 정리한 보고서 `석가탑 발견유물조사 중간 보고’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중간 정리 결과 묵서지편은 `현종 15년(1024)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와 `현종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형지기’, `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정종 4년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추기’라는 네 건의 문서로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그 결과 무구정경은 고려 초기에 석가탑이 중수될 무렵에 작성된 각종 문서에는 세 번 출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어학자인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와 역사학자인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교수 등에게 문서 판독을 의뢰한 결과, 현종 15년 처음으로 석가탑을 해체하면서 무구정경 9편(偏)과 무구정경 1권(卷)을 꺼냈다가 석탑을 다시 세울 때 보협인다라니경(보협인경) 과 함께 사리공에 다시 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석가탑은 잇따른 지진으로 정종 4년에 2차로 중수할 때는 보협인경과 함께 무구정경 1권을 다시 넣은 사실이 문서 판독 결과 나타났다.
 이승재 교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목판본 무구정경이 1차 석탑 중수 때 수습한 신라시대 유물을 다시 안장한 것인지, 아니면 고려초기에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으나 “두 가지 가능성 모두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신라시대 유물일 근거로 이 교수는 고려 정종 4년에 작성해 새로 사리공에 납입한 묵서지편은 사리함의 외부 바로 아래에서 발견된 반면, 유독 현존 무구정경 목판본만은 사리함 내부에서 발견된 대목을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해석도 “정종 4년에 2차 중수하면서 새로 납입했다는 무구정경은 왜 남아있지 않는가를 설명해 주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존 무구정경은 고려시대에 납입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서지나 서체 등으로 보아 신라 작품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 자리에 동참한 다른 학자들 또한 현존 무구정경의 서지학적 분석 결과를 토대로 무구정경의 통일신라 제작설에 무게를 싣는 발언을 쏟아냈다.
 박상국 문화재위원은 “이미 일본과 중국의 최고 종이 전문가가 현존무구정경의 종이제작 연대를 8세기 초로 판단했다”며 “약간의 개연성을 근거로 진실을 왜곡하는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무구정경 가운데 중국 당나라의 여제인 측천무후(재위 685-704년)가 만든 측천무후자가 다량 등장한다는 점을 들어 현존 무구정경의 통일신라 제작설을 주장했다.
 아울러 이승재 교수와 노명호 교수 역시 설혹 현존 목판본 무구정경이 고려시대에 납입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고려초기에 제작된 경전이라는 근거는 될 수없다고 주장했다.
 그 전에 제작된 판본이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목판을고려시대에 다시 이용해 찍어낸 판본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석가탑은 고려 초기에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잇따라 보았다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졌다.
 이런 피해 상황은 `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중 5-9행에 정종 2년(1036)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석가탑은 버팀목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는내용으로 보이고 있다.
 아울러 이 지진으로 불국사는 불문 남쪽의 계단부속시설, 하불문의 시설, 여러 행랑 시설 등이 무너져 내리는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형지기는 전하고 있다. 나아가 석가탑은 그 2년 뒤인 정종 4년(1038)에 또 다시 지진을 만났다고 형지기는 기록했다.
 중앙박물관은 “형지기의 지진 기록이 판독됨으로써 현종 15년에 작성한 석가탑 중수기를 불과 14년 후인 정종 4년(1038)에 다시 작성해 안치한 의문이 풀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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