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구역, 바람 앞의 등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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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제한구역, 바람 앞의 등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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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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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하듯 변하는 한국사회의 이슈를 따라잡기는 참으로 어렵다. 불과 3, 4주 전만 해도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부동산 폭등에 대한 대안으로 ‘그린벨트 해제’의 군불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주택·부동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번 건드리고 가야하는 주제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 개발제한구역 또는 그린벨트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종갓집의 사당처럼 시대가 변해가도 계속 유지해야 할 자산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땅 고픈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토지인가.

역사적으로 그린벨트의 시초는 1580년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의 영국으로 본다. 전염병 창궐을 막기 위해 도시 사이에 녹지를 두고 보전함으로써 옮아가는 길을 막고자 한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진짜 ‘녹색’에 중점을 둔 그린벨트 개념이 나타난다. 녹지와 하천 등을 연결한 거대한 자연의 띠로 도시를 둘러싸려는 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 주변에는 지금도 거대한 녹지의 띠가 남아 도시를 숨 쉬게 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과도한 도시개발을 막는 수단으로서의 그린벨트는 다시 1940년의 영국, 런던에서 나타났다. 계획가 아버크롬비가 수도권의 과도한 팽창과 난개발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그린벨트로 런던을 둘러싸는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발제한구역이 제정된 것은 1971년이다. 수시로 변하는 국토정책 가운데 아직까지도 명칭이나 내용이 변하지 않은 거의 유일무이한 정책이다. 돌이켜보면 성장과 개발이 우선하던 시기에 이런 정책이 수립될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수도권의 모든 토지가 들썩이며 금싸라기로 변해가도 꿋꿋이 버티던 개발제한구역은 2000년 대선에서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터부를 깨고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결국 상당 부분의 구역이 해제되기에 이른다. 한번 물고가 트였고, 이후에는 수도권 주택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논쟁이 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들이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지나치게 편협한 이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제한구역 또는 그린벨트는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어 온 정책이다. 난개발을 막는 항생제이며, 암세포처럼 과도하게 증식해가는 도시의 한계를 정하는 세포막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도시를 감싸는 거대한 자연의 띠가 되어 도시민이 다가갈 수 있는 자연환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개발제한구역이야 말로 지방도시를 지키는 마지노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이 대체 지방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개발제한구역은 단지 수도권을 다루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국토 전체의 균형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모든 균형발전 정책 중에서도 선두에 세웠을 만큼 핵심적인 정책인 것이다. 그 토대위에 비로소 도시계획권 이양, 지방기업 육성정책, 수도권정비계획과 같은 일련의 균형발전 정책이 놓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균형발전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독의 구멍을 막는 ‘두꺼비’와 같은 개발제한구역이 있어야하는 것을 당시 정책가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논쟁은 그저 ‘수도권 내부’ 논리이다. 개발제한구역을 수도권의 전유물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국토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개발제한구역은 수도권에 땅이 모자랄 때 퍼다 쓰라고 준비한 곳간이 아니다. 서울과 지방간의 균형을 위해 만든 절묘한 경계요, 지방으로도 물이 흘러가라고 세워놓은 둑인 것이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가고 지방도시마다 소멸을 걱정하는 시기에 이를 걱정하는 논쟁에는 아무 열기도 없다. 그저 수도권 부동산만이 국가적 쟁점이 되는 그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발제한구역이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경계요 둑이라는 비유가 잘 와 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산 결과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 중 딱 삼분의 일 정도만이 해제되었다고 가정하자. 넘치는 수도권의 개발압력은 불과 몇 년 안에 이곳을 서울 수준의 인구밀도로 바꾸어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떤 것일까?. 무려 인구 870만 규모의 새로운 도시권역이 발생한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인구를 모두 합한 정도라고 하면 감이 잡힐까. 홍수에 둑이 한번 터져나가면 복구가 어렵다. 균형발전의 둑도 그러하고, 그 결과는 더욱 두려운 것이 될 수 있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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