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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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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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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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지나며 문화 활동들은 마치 동면 상태에 접어든 것만 같다. 작품 하나에 수백만 관객이 들던 영화조차도 이제 개봉을 꺼리고 있을 지경이다. 대중문화가 이런 지경이니, 지역의 소소한 문화 활동은 말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포항의 지역 문화는 의미가 큰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꿈틀로’라 부르는 문화예술창작지구 사업의 첫 단계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여천동 일대에 자리 잡은 꿈틀로는 문화 창작, 교육, 기획 등과 관련된 종사자들을 도심부에 유치하여 특별한 장소를 형성하겠다는 사업이다.

공공사업으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생각만큼 여유 있는 여건은 아니다. 이제 4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문화사업의 특성 상, 아직도 태동기, 성장기를 지나고 있을 뿐, 아직 안정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공공의 지원금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다른 재생사업에 비교할 때에는 그저 미미한 수준일 뿐이다. 안 그래도 발걸음이 끊긴 도심부, 그것도 뒷골목에 숨은 이 거리를 시민들이 알아서 찾아와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팬데믹까지, 이 작은 거리의 운명이 자못 안쓰럽게 느껴질 수밖에.

그런데도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작은 거리에서 나타난 ‘꿈틀거림’이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출범 4년차까지 갖가지 활동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 숫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각종 체험과 교육을 위해 찾아온 수강생의 숫자도 3천명을 넘어섰다. 소매업만이 남아 있던 도심부에 이처럼 문화예술과 관련된 발걸음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일견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 작은 거리에 있어 2020년은 쉽게 지나기 어려운 가기 어려운 고난인 듯하다.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재난이 그러하고, 아직 공공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불확실한 상황이 또 그러하다.

사실 꿈틀로는 황무지에 가까운 땅에 심겨진 꽃과 같다. 물론, 꿈틀로가 위치한 여천동 일대는 과거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집중되었던 곳이기는 하다. 당시 문화예술인, 지식인들이 모여들 던 찻집과 음악실, 그리고 지역의 랜드마크였던 아카데미 극장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기억일 뿐, 이제는 공간도 시간도 완연히 다른 맥락에 놓여 버렸다. 문화자산들은 이미 모두 사라지거나 이전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주로 유흥주점과 숙박업들이다. 문화를 느껴줄 소비자들도 이제 그 때와는 다르다. 과거의 ‘추억 팔이’에 적합한 장소일지는 모르지만, 문화를 소비해 줄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곳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저 심어놓았다고 낙관할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황무지가 옥토가 되도록 부지런히 관리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 하나의 생태계라 할 때, 문화예술이란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도 섬세한 개체들이다. 마치 희귀한 동식물들처럼, 가져다가 기르고 싶다 해도 쉽사리 성공할 수 없는 그런 개체들이다. 말하자면, 쉽게 ‘양식’될 수 없는 개체들이다. 뒷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소극장, 전시관, 갤러리 같은 소소한 시설들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지역에 이런 시설들이 자생하여 군락을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면, 지역에 이처럼 민감한 개체들이 자리 잡게 하려면 어떡해야할까? 특별한 지름길은 없다. 성실하고도 지속적으로 이들이 뿌리내리게 도와주는 수밖에. 가끔씩 농민들이 부단한 노력 끝에 희귀 생물을 양식하는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다. 지역이 문화예술을 다루는 방법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문화예술을 그저 씨앗만 뿌려놓으면 추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생각일 뿐이다. 오랜 시간 인내를 발휘하면서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토양 자체도 그들에게 맞게 풍화되어가면서 자리잡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지구가 도시재생을 위한 약방의 감초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다. 꽃이 피어나는 긴 과정은 무시된 채, 성과와 결과만 평가되는 것도 안타깝다. 문화예술은 특효약이 아니다. 측정하고 평가하면서 입을 벌리고 기다릴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널 믿지 아녔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라는 시구처럼, 잘 가꾸고 키우며 넌지시 사랑하는 가운데 어느덧 두세 송이 피어나는, 그런 대상인 것이다. 꿈틀로를 대하는 정책가, 시민들의 시각도 그랬으면 한다. 대단한 볼거리나 지역발전 효과를 운운하기 이전에 과연 나는 이곳에 얼마나 물을 주고 있는가라는 시민적 자각이 먼저 있었으면 한다. 지역마다 쇠락 기운이 역력한 현실에서, 그런 자각이 없이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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