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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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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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들으며
-쥐쥐밴드의 탄생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내 친구 손민규에게 남은 인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연필이나 볼펜의 흔적 없이 모든 문제집을 푼다는 점, 두 번째는 메탈을 동경하고 피아노를 꽤 잘 쳐서 짧은 기간 함께 밴드 활동을 했다는 점, 세 번째는 매일 아침 변기에 앉아 니체를 읽는다는 점. 이 정도라면 만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좋을 텐데, 하물며 녀석은 위화감이나, 우쭐거림, 잘난 척, 으레 그 나이에 나타나는 반항이나 거들먹거림도 없었다. 친화적이고, 도덕적이며, 착하기까지 한 녀석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나는 꽤 궁금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동창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지만, 녀석과는 줄곧(하루에도 몇 번이나) 연락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녀석을 염탐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니체를 읽는 걸 알아낼 정도로.

그런 손민규가 첫 책을 냈다. 녀석이라면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될 줄 예상했지만, 하필 그게 ‘산’을 주제로 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책 제목이 <밥보다 등산>(책밥상)이라니. 등산을 주제로 한 책을 많이 못 봐서인지 그런 건 전문 산악인이 도전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손민규는 인문학을 전공한 서점인일 뿐인데, 이게 웬걸, 책을 읽는 내내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30년 산행 경험을 토대로 전문가라고 해도 좋을 알찬 지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공교롭게도 내 친구이자 신인작가 손민규와 함께 북콘서트를 하게 됐다. 우리는 관객을 위해 합주를 결심했고, 학창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밴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쥐쥐밴드가 탄생했다.



-그대에게

나는 꽤 많은 밴드(스크래치-리드머-잡동사니-Brujimao-NoMoreTram)에 몸담았다. 그리고 이제는 쥐쥐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장소는 물리학자 이기진 교수님의 창성동 실험실 갤러리. 코로나 시기인 만큼 많은 관객을 모집할 순 없었지만, 우리는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노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쥐쥐밴드’가 나의 마지막 밴드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은데, 어쨌거나 손민규와는 생애 첫 밴드와 2021년의 쥐쥐밴드를 함께 하게 된 셈이다. 우리는 20여 년 전 합주했던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연주하기로 했다. 반주만 들어도 잔털이 곤두서는 그 곡을 다시 연주할 수 있는 행운이 온 것이다. 손 작가는 내게 한 곡을 더 제안했는데, 그건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였다.

손민규가 그 곡을 언급한 까닭은 단순하게 생각해선 공연은 다가오고 연습 기간은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습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 ‘My Way’라는 점에서 나는 녀석의 내면 심층부에 담긴 어떤 애수를 읽어냈다. 이 곡을 줄곧 연주해왔구나.(그렇다 나는 아직 녀석을 분석 중이다) 그리고 그건 십 대 시절의 어떤 기억을 놓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My way는 영화 <친구>를 본 이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가 없는 노래다. 그 영화의 로케이션은 우리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살아온 영도와 부산의 바다이기에 향수가 서린 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뿐인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넘버1 히트곡이며, 마지막 구절 ‘앤디딧 마이웨이(and did it my way)’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마법을 가진 멜로디다. 그 가사를 한국어로 옮기자면 이런 무드다.

‘그래, 그건 나의 길, 나만의 방식이었어.’



-앤디딧 마이웨이

나는 그 노래가 올드하게 느껴져 함께 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손민규는 ‘My way’를 오프닝 연주곡으로 들려줬고, 무사히 북콘서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북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내가 거절했던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홀로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앤디딧 마이웨이, 앤디딧 마이웨이.

각자의 길, 각자의 방식,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가치를 창출하고 발견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세상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한 권의 저서에는 저자의 삶이 녹아있다. 손민규 작가에게는 살아온 궤적이 산으로 수렴되어가는 과정인 듯 했다. 아직 그 산은 정상이 보이지 않고, 다만 지금 올라선 상태에서 자신의 체력과 한계를 마주하는 최초의 경험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모든 건 과거의 일이 될 것이고, 우리는 거대한 산을 내려가야 하는 순간과 직면하게 된다. 앤디딧 마이웨이, 앤디딧 마이웨이. 그런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문장을 읽고, 음악을 공유한다는 건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 올드한 이 노래가 여태 혀끝에 남아 있는 까닭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 것만 같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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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21-06-30 23:06:14
'그대에게' 'my way' 모두 좋은 곡이죠. 인생은 my way 하면서도, 내 길을 바칠 그대가 있다면 풍성해지는 듯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래 잊고 있었던 두 곡을 오늘 밤에 들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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