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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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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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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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고향! 이는 듣기만 하여도 늘 가슴이 설레는 단어다. 고향의 정취 중에서도 특히 지금과 같은 7월 고향의 여름밤, 수만 마리의 청개구리 울음소리에 놀란 달빛과 소낙비 온 뒤의 구려진 도랑과 저수지의 가로등에 비치는 물빛은 그야말로 일품(一品)이다.

두보(杜甫)가 그토록 노래했던 중국의 서호(西湖)가 전혀 부럽지 않을 정도다. 특히, 한평생 못난 자식들을 위해 갈 때마다 쌓아둔 온갖 보따리를 늘 챙겨주시던 어머니와 외양간의 풋풋하고 짙은 거름 냄새는 고향의 향기 같다. 종종 저녁노을 속으로 피어오르는 고향의 굴뚝 연기. 언제나 시원한 청량음료수처럼 고달픈 삶에 늘 새롯새롯 생동감을 더해 준다. 매번 가슴이 뭉클해진다.

누구에게나 어머니와 고향이 있는 법이나 특히 필자는 유독 불효(不孝)의 생각이 더해진다. 어릴 적, 유난히 그토록 휘어진 어머니의 허리와 백발(白髮)의 머리결에서 느껴지는 애틋한 모정(母情)의 세월이라 젊은 시절에는 종종 온 밤을 지새운 까닭이다. 문득, ’한평생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싼 보따리 수‘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특히 자취하던 중고와 대학 등 학창 시절의 수 없는 보따리, 거기엔 어머니의 무한(無限)한 에고(ego) 사랑과 보따리 속의 믿음과 소통의 빛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필자의 고향은 화왕산 끝자락의 첩첩산골이다. 3군의 경계선이라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死角地帶)였기에 예순(睿順)을 훌쩍 넘은 필자가 고3시절. 고향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으니 무진장 산골 촌놈인 셈이다. 지금도 연구실 한쪽에 자리한 그 당시에 쓰던 ‘석유 호롱‘을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며 간혹 호롱불을 피우기도 한다. 그 이유는 ’호롱불‘을 보면 생각나는 오십년 전의 아련한 추억 한점씩들이 문득문득 가슴을 쿵쿵거리며 한없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비 오면 유독 끊어지길 잘하던, 지금은 사라진 초등학교 앞의 구겨진 넥타이 같은 도랑 길을 건너면서도, 젊은 시절의 캄캄하던 방황 속에서도, 이마 푸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세월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 보면 어쩌면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보따리‘의 교훈이 아니었을까? 늘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가난하게 살아온 보릿고개. 당시의 의미와 얼마 남지 않은 살아갈 삶의 지향(指向)을 위하여 더 큰 집념의 다짐을 종종 해보곤 한다.

그렇다. 참으로 모성(母性)이야말로 인간 본능의 가장 숭고한 원천이다. 모성은 곧 달빛이요, 물빛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엄부자모(嚴父慈母)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한결같이 사랑의 화신(花信)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송강(松江) 정철의 시조가 떠 오른다.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종종 도시의 척박한 공간과 하 수상한 코로나 시절을 훌쩍 떠나 고향의 정취와 어머니의 애틋한 옛 향기를 흠뻑 느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김영국 계명대벤처창업학과 교수.칼럼니스트.Saxopho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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