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려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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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려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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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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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8개월 전 ‘코비드-19’이란 괴물이 인류를 볼모로 잡았다. 그리고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가만히 보고 있다. 인류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과학적인 성과로 모든 것을 예측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으나, 이 전염병을 물리치거나 장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이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바빌론 유수(幽囚)’를 당한 것처럼, 인류는 ‘코비드-19’에 의해 21세기판 ‘바빌론 유수’를 경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은 안일(安逸)했다. 자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선민으로, 절대 망하지 않고, 예루살렘은 신이 거주하는 공인 시온성으로, 세상의 어떤 공격에도 파괴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건물이라 착각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그만 머리에서 나온 경험을 추려 교리를 만들고, 거대한 신전을 만들어 신을 정의하고 감금시켰다. 그들은 신을 교리의 말장난에 정의되는 신념으로 전락시켰고 예루살렘이란 겉보기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신을 투옥했다. 자신들이 정한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해, 그 안에만 존재하는 신을 ‘예배’라는 명목으로 구경했다.

신을 인간의 말로 담아, 가타부타를 가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신성모독이다. 붓다는 불교도가 아니었고 예수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었다. 붓다는 법구경을 읽은 적이 없고 예수는 복음서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붓다와 예수와 같은 성현들은 밤하늘의 별과 산과 강을 보고, 들에 핀 야생화와 이름 모를 새를 보고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을 신뢰하고,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인간은 약간의 성공을 얻으면 오만해진다. 그리기에 영원히 성공한 사람도 없고 영원히 실패한 사람도 없다. 긴 시간에서 안에서 인생을 조망하면, 우주의 섭리가 조화롭듯이, 인간의 흥망성쇠, 역시 공평하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자. 예루살렘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멸한 것이다. ‘코비드-19’이 가져온 어려움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라는 경고다. 마치 르네상스가 죽어가는 유럽을 살려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전의 체계를 대체하여 다시 태어나려는 용기와 지혜다.

영원히 건재할 것만 같았던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왕족과 사제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고 갔다. 거의 50년 동안 유대인들을 소위 ‘바빌론 유수’를 경험하게 된다. 바빌론 유수는, 자신들이 알고 있던 신, 신에 대한 담론인 교리, 인간에 대한 시선, 동식물에 대한 각성 등 전 분야에서 정신적이며 영적인 혁명이 시작이다. 이 유수가 없다면, 오늘날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혁명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반응이자,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깊은 안식이자 묵상이었다.

20세기 초, 인류는 과학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경험하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신을 과학으로 대치하면서, 현대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자랑하던 최첨단 과학으로 인류 최대 비극인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서로를 죽였다. 시대는 현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이 삶의 문법인 원시로 돌아갔다.

‘코비드-19’ 유수를 통해, 우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참 동안 이 포로 생활을 지속할 것이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를 무어라고 정의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의존적인 용어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잉크를 소비하였다.

2021년, 우리는 비로소 ‘모더니즘’을 시작하고 있다. 모더니즘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우리과 그들을 하나라고 여기는 포용정신이다. 모더니즘은 철학자 니체가 말한 ‘선과 악을 넘어선 저편’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내용을 탐구하고 실제오 우리의 삶에서 구축하는 기간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이슬람 근본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중독자로 전락시키는 물질주의가 현대인들을 원시인보다 못한 이기적인 짐승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모더니즘을 구축할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실마리는 철학자의 심오한 사상이나 정치인의 공허한 구호에 있지 않다. 그 실마리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 즉 내부(內部)에 있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46~119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내부에서 이룬 것으로, 우리의 외부를 바꿀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변화된 삶을 상상하고 그 하루 동안 조용하게 수련하는 동안, 각자가 조금씩 변할 것이다. 그 변한 사람 하나가, 우리 공동체의 변화이며, 우리 국가의 혁신이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감동을 주지 못하고 누구도 이끌지 못할 것이다.

모더니즘은 모두가 자신에게 각자에 어울리는 내면의 혁신에서 시작될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최선으로 이끄는 삶의 교리를 만들고, 그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셀프-릴리젼’(Self-Religion), 즉 ‘자기-종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점검하고 있는가? 나는 그 내부를 혁신하고 있는가? 그 간절한 혁신은, 타인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회자 될 것이다.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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