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포항문학사무차장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가 지은 책이 있다. 침묵이란 걸 가지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침묵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 책,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어가야 하는 책읽기의 상식을 깨어버리는 책, 한꺼번에 읽을 수 없는 뻑뻑한 진국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어느 페이지를 열고 시작해도 되는 책, 머리맡에 두고 가끔씩 읽으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깊고 맑은 하늘과 같은 책, 갈피를 넘기면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와서 깊이 자리 잡는 책, 행간 행간에 융숭한 깊이가 있어서 내가 말을 잊고 침묵하게 되는 그런 책, 가만히 계셔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이라고 속삭여주는 책.
소설가 신경숙은 책날개에 적힌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침묵의 세계를 읽고 있으면 사계절과 언어와 자아와 신화와 사랑, 예술과 희망, 너와 나의 몸짓이나 자연과 사물들이 침묵을 바탕으로 삼지 않을 때 얼마나 상하는가를 느끼게 한다.
아니 세상의 만물이 침묵을 바탕삼아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흡수하는가를 알게 한다.
실리와 유용의 저편에 있는 침묵이 사실은 가장 먼 데까지 퍼져나간 가장 성숙한 존재의 대지라는 걸.’
`존재의 대지’ 라는 말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에 비하면 부족한 말이지만 침묵의 근원을 드러내어주는 은유이므로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에 대한 글을 몇 개 옮기면 `침묵이란 그저 사람들이 말을 그쳐서 생겨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이며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오직 말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지만, 오직 침묵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마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작은 침묵의 언덕과 같다. 침묵은 마치 아기에게 기어오르는 듯하고, 작은 침묵의 언덕인 아기는 말없이 앉아 있다.’ `연인들은 침묵의 공모자들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연인에게 말할 때 그 연인은 그의 말보다 침묵에 귀 기울인다.
그 연인은 “침묵하셔요. 내가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말들이다. 침묵에대해 침묵하지 못한 이런 깜찍한 책은 잘근잘근 씹어서 몸속으로 들여보내고 싶다. 내 침묵 속으로 깊숙이 들여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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