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어깃장이라도 놓겠다는듯 고추상투란 말도 있다.“늙은이의 고추 크기만한 작은 상투”라는 게 사전의 뜻풀이다. 이밖에도 `고추’를 앞세운 낱말들은 많지만 대체로 이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시쳇말투를 흉내내면 `맵거나 맥없거나’쯤 되려나.
매워서 쩔쩔매게 하는 고추가 어쩌다가 맥없고 힘 못쓰는 존재로 얕잡혀 보이기도 하는 것일까. 자못 이상한 노릇이로되 이런 모습은 고추밭에 가보면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어제까지도 싱싱하고 풋풋하기가 이를 데 없어 보이던 고추가 하룻밤 사이에 누렇게 죽을 상이 돼버린 모습 말이다. 농사꾼들은 이를 역병이라고 한다. 맵기로는 첫손 꼽히는 고추도 역병 앞에서만은 작아지는 것인가.
고추 잡는 고추역병에게도 `천적’이 생겼나 보다. 고추대목을 자동으로 접목하는 로봇이다. 고추접목묘를 재배했더니 역병 발생률이 0.4%에 지나지 않더라는 보고가 나와있다. 영덕과 영양지역의 고추재배농가에서 나온 이야기다. 고추접목로봇은 역병에만 강한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보다 시간당 750%의 작업효율을 보였다고 한다. 접목 성공률은 95%를 넘었다. 그러니 고추묘 구입비를 아낄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첨단시대는 농업이라해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로써 뒷받침된 셈이다. 첨단 로봇이 사람보다 농사를 훨씬 더 농사를 잘 지어내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앞으로는 토마토 농사도 로봇에게 맡기려 한다는 소식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토마토 뿐이랴. 농업혁명이 머지않은 것인가.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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