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총장을 만든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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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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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제21대 찰스 엘리엇 총장은 1869년부터 무려 40년간 재직했다. 가장 위대한 총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엘리엇이 총장에 취임했을 때 하버드는 평범한 대학교였지만 40년 만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변모했다.

엘리엇은 하버드 졸업 후에 화학부 교수가 되는데 실패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대학의 교육 시스템, 교육의 국가적 의미, 교육과 산업의 관계 등 주제를 깊이 연구했다. 당시 신흥 국가였던 미국이 산업과 통상을 통해 발전할 길이 무엇인지,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많이 생각했다.

당시 미국 대학들은 급속한 산업화를 교육과 지식으로 뒷받침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고전 위주로 수업을 했고 과학이나 실용 지식은 가르치지 않았다. 일부 대학이 조금씩 커리큘럼을 개편해 개혁을 시작했다. 1865년에 MIT가 설립되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하버드는 시대의 조류에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그런 분위기에서 MIT 교수로 귀국했다. 그리고 그동안 다듬었던 자신의 대학 발전에 대한 비전을 1869년 초에 ‘신교육’이라는 제목의 글로 발표했다. 그 글 한 편이 엘리엇을 하버드대 총장으로 만들었고 엘리엇은 오늘날의 하버드를 만들었다. 엘리엇이 글을 발표했던 매체는 월간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이다. 당시 하버드대 이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업가 동문들이 중요 독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엘리엇의 글을 읽고 크게 공감해 당시 35세였던 엘리엇을 총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좀 과장해 말하면 무명의 젊은 교수가 글 한 편을 잘 써서 하버드 총장이 되었고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어 위대한 업적을 냈다. 애틀랜틱이라는 매체의 파워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매체의 영향력은 독자들이 좌우한다.

애틀랜틱은 1857년 보스턴에서 문학과 문화평론지로 창간되었다. 무려 랄프 에머슨과 헨리 롱펠로우가 공동 창립자다. 낭만주의 시인 제임스 로웰이 초대 편집장이었다. 미국의 교육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글들이 많이 실렸다. 마크 트웨인, 헤밍웨이, 마틴 루터 킹도 글을 발표했다. 미국의 국가이념, 정치와 대통령에 관한 기사에 중점을 두었다. 1914년에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 1925년에 뉴요커 (The New Yorker)가 출범해 경쟁한다.

애틀랜틱은 1999년에 미국 언론계의 거물 데이빗 브래들리에게 넘어갔다. 브래들리는 세 아들이 모두 언론에 관심을 두지 않아 적합한 주인을 찾았는데 무려 600이나 되는 후보 리스트를 작성했고 그 중 로렌 잡스가 최적이라고 판단해 2017년에 로렌 잡스의 사회단체 에머슨 컬렉티브에 매각했다.

요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특정 신문이 배달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특정 매체만 읽는 독자는 많지 않고 이전보다 독자의 정체성과 특정 매체의 연결은 약해졌다. 기사와 칼럼이 점점 짧아지면서 그럴 기회도 사라진다. 장문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매체들의 영향력은 이전 같지 않다. 그 결과 사회가 점점 더 조급해지고 기억력은 약해진다. 정보와 지식 기반이 획기적으로 넓어졌지만 우리 생각은 탄탄하지가 않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소년의 사진이 화제가 될 정도다.

전문학술지를 ‘덕후들의 동호회지’라고 부르는 농담이 있다. 세상의 변화를 궁극적으로 성취하는 글들은 학술지에 실려 발표되지만 널리 읽혀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애틀랜틱 같은 종류의 지면들이 학술지와 일간 미디어 사이에서 사회의 지성 수준을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해주면 좋을 것이다.

한편, 해외의 유수한 지면을 국내에서 편리하게 접하고 큰 힘 들이지 않고 컨텐츠를 흡수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어떤 매체의 어떤 글을 읽어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다. 글로벌에는 국내보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매체가 있다. 다음은 외국어 해독이다. 아무리 구글 번역기가 좋지만 백 퍼센트 신뢰는 위험하다. 필자처럼 오래 외국어를 쓰고 강의하고 외국인들과 교류를 해도 다양한 영역과 주제의 영어 전반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책도 가장 먼저 좋은 번역이 있는지를 찾는다. 시간을 열 배 이상 절약해 주고 오래 남는다. 우리 인간은 모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과 정보 사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최근에 서비스를 시작한 매체가 하나 있어 소개한다. 이름이 PADO(파도)다. www.pado.kr 애틀랜틱,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를 필두로 해외 여러 유수 매체와 제휴해 장문(long read) 기사를 번역해 제공한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 외교관 출신 편집국장과 BBC 출신 에디터가 공들여 제작하고 있다.

영어에 ‘You are what you read“라는 경구가 있다. 우리 인간 각자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가 독서나 그 밖의 읽을거리다. 남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뭘 읽는지를 보면 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이 이력서나 자기소개 지면 한쪽에 ’Tagliche LectUre‘라는 난을 두는 것을 종종 보았다. 말 그대로 내가 매일 읽는 매체라는 뜻이다. 남에게 나를 소개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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