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가지의 변신
  • 뉴스1
구운 가지의 변신
  • 뉴스1
  • 승인 2023.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가지무침이 있으면 그대로 남겨가곤 했다. 같이 도시락 먹던 친구들도 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해주시던 반찬이라 아침에 바로 만든 가지무침은 어느 정도 손이 갔지만 도시락통에서 몇 시간 담겨있으면 좀 더 물컹해졌다. 달걀 반찬과 같이 놓이면 푸르죽죽한 색깔을 하얀 달걀에 입혀 놓기도 했다. 익히기 전 가지의 반짝이던 보라색은 어디 가고 축 늘어진 무침으로 변하는지 어린 시절 이해가 안 되었다.

예전, 그러니까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 가지는 지금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았고 유용했다. 배추가 잘 나오지 않는 계절에는 김치 재료로도 썼다. 일단 가지를 큼직하게 길이로 잘라 소금물에 데친 후 물기를 살짝 짜낸다. 여기에 텃밭에 자라는 여름 부추를 넣고 김치 양념으로 버무린다. 가지김치는 담고 난 후 바로 먹을 수 있고 익은 후 새콤하게 먹기도 좋다. 위에서 언급했던 가지무침도 여름철 흔한 반찬이었다. 한창 가지가 많이 나올 즈음에는 가지를 잘라 채반에 말려 놓았다가 겨울이 되면 물에 불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다.

요즘은 가지로 어떤 음식을 하는지 궁금했다. 오랜 기간 호텔 한식당에서 일했던 친구에게 가지로 어떤 음식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좀 냉정하게 말하면 가지는 반찬일 뿐 요리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한다. “가지에 품을 넣어 만들면 그에 따른 부가가치가 올라야 하잖아? 단품 가지나물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꺼낼까?:” 익숙한 가지 조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주위에 급식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 군인들에게 가지 선호도를 물어보았다. 우선 가지 선호를 떠나 접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가지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가지 조리 방법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서 밥반찬으로서뿐만 아니라 타문화 음식에서 새로운 조합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구운가지 나물

가지를 길이로 길게 썰어 네 쪽으로 나누어 준다. 두꺼운 껍질 쪽은 칼집을 내어주고 소금, 후추로 살짝 간을 한다. 식용유나 올리브오일을 살짝 뿌려 한두 번 뒤섞어 주고 직화로 구워준다. 이렇게 하면 불향이 입혀져 가지의 미끌거리는 식감이 덜하다. 굽는 정도는 가지가 살짝 처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센 불에 가볍게 익힌다. 구워낸 후 열을 식히고 다진 마늘, 청양고추, 액젓으로 간을 해준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약간 뿌리고 파송송 올려주면 좋다.

◇ 가지 샌드위치

구운 가지 샌드위치는 나에게 가지에 대한 편견을 사라지게 해준 음식이다. 제주 카페 오픈 메뉴를 만들 때 오너분의 강력한 권유로 준비하게 되었다. 가지를 두툼하게 잘라 소금, 후추에 살짝 절이듯이 재워 두고 올리브 오일을 뿌려 센 불에 양면을 구워낸다. 바삭한 이탈리안 치아바타 안에 구운가지, 브리치즈, 절인 방울토마토를 넣고 샌드위치 프레스에 넣어 굽는다. 크림향의 치즈와 가지가 어울려 아침에도 부담 없이 먹기 좋고 커피와도 잘 어울려 인기가 있었다.

◇ 애그플랜트 캐비아

가지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구워내는 음식은 프렌치 식당에서 애피타이저로 준비하곤 했다. 가지 캐비아 (eggplant caviar)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실제 캐비아와는 무관하다. 통가지에 살짝 살집을 내고 그릴에 직화로 굽는다. 식힌 후에는 가지 속살만을 긁어낸다. 가지는 물기가 많으니 면포 등에 올려놓고 살짝 수분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 준다. 그 후에 블랜더에 가지와 올리브오일에 천천히 익힌 마늘, 양파,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넣고 곱게 갈아준다. 식은 뒤에 얇게 썬 빵이나 바삭한 라바시(lavashi,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바삭하고 얇은 밀가루빵)에 발라 먹는다. 이렇게 만든 에그플렌트 케비아는 뜨거울 때 유리병에 넣고 멸균 소독하면 저장 음식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이렇게 몇 가지 가지 요리를 제안해 보았다. 구운가지는 불향이 살아 있고 조리법이 간단하다. 또 튀김이나 볶음에 비해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가지를 썰어 구울 때 최소 1cm 이상으로 두툼하게 썰어 주어야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얇게 썬 가지는 그대로 축 늘어져 버리고 필요 이상 물기가 나와 버린다.

요즘같이 야채류 물가가 높아질 때 가지의 진가가 보인다. 가지는 대체로 1년 내내 구입가능하고 가격변동이 크지 않은 몇 안 되는 야채이다. 올해 8월기준으로 가지 상품 5㎏는 7920원이고 소매가로는 1만원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식단을 보면 점점 야채 섭취량이 줄고 있다. 식당 손님들도 음식에서 양파, 당근 등 야채를 빼고 드시는 분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개인의 취향이긴 하지만, 하루 400~500g의 과채류 섭취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채소가격이 뛰고 있다. 이런 시기에 안정된 가격으로 맛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가지로 식단을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호제 셰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