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속 죽음과 희생의 길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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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속 죽음과 희생의 길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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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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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내전 후유증 그린 `문유랑가보’로
`칸’의 시선 사로잡은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

 
재미교포 2세 정이삭(29·미국명 리 아이작 정)감독은 장편 데뷔작 `문유랑가보’로 지난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다.
 그리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인 두 번째 장편 `러키 라이프(Lucky Life)’는 올해 제61회 칸 영화제의 젊은 감독 지원 프로젝트인 `시네파운데이션 아틀리에’에 뽑혔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감독이 2년 연속 칸에 초청받은 것.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가장 존경하는 감독들이 참석하고 있는 칸 영화제에 참여하게 돼 감사한다”며 “칸 영화제는 차세대 감독들을 지원하기를 바라는 것 같고,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콜로라도의 한국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아칸소에서 자라난 정 감독은 “국가적 정체성을 찾는 영화도 중요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죽음과 개인의 희생이라는 주제에 더 사로잡혀 있다”며 “관객과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유랑가보’는 르완다 내전을 겪은 두 소년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러키 라이프’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남녀 네 명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장편 두 편으로 칸 영화제에 두 번이나 초청됐다.
 A. 칸 영화제는 영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들의 참여도 최근에 두드러졌기 때문에 이 영화제와 관계를 쌓는 일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칸 영화제는 차세대 감독들을 적극 지원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되고 싶다.
 Q. 결과적으로 데뷔작 `문유랑가보’로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예산 3만 달러와 촬영 기간 11일이라는 악조건으로 르완다에서 영화 찍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잠잘 시간도 충분치 않았고 촬영을 시작하기 며칠 전까지도 배우와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다. 주연 배우 중 하나가 촬영 사흘 전에 그만둬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힘들수록 더 나은 영화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르완다에 관한 영화이지만 대학살 사건보다는 그 이후의 후유증을 그리고 있다.
 A. 내 목표는 르완다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학살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재연하는 영화는 이미 많다. 나는 르완다 관객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공감대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인데, 많은 르완다인에게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그들은 잔혹한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감정을 묻어둔 채 살아갈 뿐이었던 것이다. 그 분노와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르완다인의 시각에서 르완다인을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나.
 A.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먼저 사람들을 그릴 때는 진실해 보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예술적 신념에 부합하면서도 르완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내게는 이 영화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문화의 접합점이다.
그러므로 르완다, 미국, 프랑스, 한국 등 다양한 문화권의관객이 이 영화에서 비슷한 연결고리를 찾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Q. 뉴욕타임스는 미국 한인가정에서 자라난 감독의 `무장소성(placelessness)’이 `문유랑가보’의 중심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그런 점들이 이 영화로 나를 이끈 계기가 되긴 했겠지만 `그 문화에 속해 있지 않다’는 감정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중심에 르완다가 있기를 바랐다.
 Q.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 등 한인 감독들이 재미교포로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다룬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주제에는 관심이 없나.
 A. 이 감독들은 국적에 대한 정체성을 바라보는 동시에 외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이고 나 역시 이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 주제에끌리지 않는다. 죽음과 개인의 희생이라는 문제에 더 사로잡혀 있다.
 Q. 영화를 통해 성취하려는 것은 뭔가.
 A.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요 몇 년 사이 계속 변하고 있다. 요즘에는 미디어가 정신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이후 가족과 스페인을 여행했는데 오래된 성당들을 돌아다녔다. 그런 아름다운 성당에처음 들어가 한두 시간 머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러키 라이프’는 `문유랑가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이지만 주인공들의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인가.
 A. 두 편 모두 여행에 기댄 이야기며, 자연 또는 지형이 여정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러키 라이프’의 아이디어는 `문유랑가보’를 찍기 두어 달 전에 떠올랐다. 핵심을 설명하자면, 환멸감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문유랑가보’와는 비슷한 주제를 탐구하는 영화다. 두 편 모두 특별히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관객과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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