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차림에 생양파채를 산더미처럼 가져다준다. 구운 돼지고기를 간장소스에 살짝 담가 생양파와 먹다 보면 아삭한 양파의 단맛에 고기를 물리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양식에서는 양파를 생으로 잘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에서 먹는 생양파는 유독 맛이 있었다.
미국에는 한국보다 다양한 종류의 양파가 있었다. 비달리아(Vidalia) 어니언은 달달한 맛이 있는 양파이고 펄(Pearl) 어니언은 앙증맞은 미니 양파이다. 붉은색 레드(Red) 어니언은 아삭하고 단맛이 강하다.
뉴욕 거리음식 중 가장 오래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핫도그다. 작은 은색의 이동식 부스에서 파는 이 음식은 손쉽게 배고픔을 해결하기 좋았다. 부드러운 빵에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소시지를 얹고 취향 따라 머스타드, 케첩을 뿌려준다. 여기에 생양파가 빠지지 않는다. 소시지의 육즙이 톡톡 터질 때 함께 씹히는 달달한 양파가 잘 어울렸다.
다양한 양파를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양파맛은 한국 것이 더 맛있었다고 느꼈다. 적당한 단맛에 매운 향도 있고 아삭하면서 수분감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양파 소비량은 연간 1인당 28.6㎏ 정도라고 한다. 전세계로 보면 세계 5위라고 하니 양파 사랑이 유난한 것 같다. 중국집에서 양파와 춘장을 찍어 먹듯이 쌀국숫집에서도 양파를 추가로 주문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각종 고기를 구울 때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국수나 파스타집에서는 피클 및 장아찌류로도 양파를 먹는다.
우리만큼 양파를 즐기는 나라는 인도라고 할 수 있다. 인도식 카레에는 대부분 양파가 많이 들어가면서 걸쭉한 소스 형태를 유지한다. 인도 식당의 밑준비 중 하나는 양파와 물을 넣고 끓여서 다 익으면 갈아서 준비하는 것이다. 이 베이스에 카레 종류에 따라 다양한 조합의 카레를 만든다.
인도 요리에서도 생양파는 매 끼니에 빠지면 서운한 식재료라고 할 수 있다. 인도식 기본 식사라 하면 짜파티, 야채 혹은 육류요리, 그리고 양파샐러드가 곁들여져 나온다. 여기에 오이와 청고추를 곁들여서 먹는데 레몬 웻지로 즙을 살짝 뿌려준다. 이 양파샐러드는 비싸지 않아도 추가 지불을 해야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의 인도식당에서는 생양파와 레몬 대신 매콤한 무침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양파를 썰고 고운 고춧가루, 레몬주스, 설탕, 소금을 넣어 무치면 각종 카레나 탄두리에 잘 어울린다.
이렇게 양파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식사에서 빠지기 힘든 식재료인 셈이다. 매일 먹는 양파가 갑자기 부족해지거나 가격이 오른다면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인도에서는 198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양파가격이 폭등해 정권이 바뀌는 원인이 된 적이 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난해에도 양파가격이 오르자 해외 수출을 금지하였고, 이 여파로 인도 양파에 의존하던 주변 방글라데시는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가까운 우방에도 내주기 힘든 양파가 된 것이다.
작년부터 우리나라도 양팟값이 많이 올랐다. 자주 가던 돼지갈빗집에서는 양파 대신 양배추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음식 가격이 인상되고 나서야 다시 양파로 되돌아왔다.
일 년에 세 번 정도 수확이 가능한 인도 같은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사실 기후 여건이 좋지 않다. 이런 조건 때문에 저장 기술을 활용한다. 주로 3~4월에 햇양파가 나와 소비되고 6~8월에는 저장용 양파가 나온다. 이 저장양파를 잘 말려서 냉장창고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된 양파는 이듬해 햇양파가 나올 때까지 우리네 식단을 책임진다.
지금처럼 봄꽃이 피고 어딘가 바깥 외출을 하고 싶어지는 때면 주방 양파는 이 햇양파로 바뀐다. 햇양파는 좀 더 단맛이 많고 매운맛이 덜하다. 용도에 따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봄의 기운을 잠시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당에서 먹는 양파가 유난히 달게 느껴진다면 바로 햇양파로 바뀐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양파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을 체감하다 보니 햇양파는 조금 저렴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자주 가던 돼지갈빗집에서도 이제 양파 서비스를 셀프에서 직접 제공하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남고 버려지는 양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조만간 양파 리필에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세상의 변화가 빠른 요즘, 예전처럼 풍성한 양파 인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까.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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