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님이 안계신 세상은 암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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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님이 안계신 세상은 암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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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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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 어버이를 잃었다. 괴롭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던 `고결한 영혼’을 하나님 곁으로 영영 떠나보내고 말았다. 힘들고 삭막한 세상, 어찌 참고 견디라고, 가여운 영혼 누구 어깨에 기대라고 어찌 혼자 가버리셨다는 말인가. 영면하시면서 남긴 “고맙다”는 말씀, 진작에 우리들이 추기경님께 들려드렸어야 할 말 아니던가.
 사제로 평생을 종사해온 추기경님은 암흑을 밝히는 빛이셨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은신처였으며, 타락한 정신을 일깨우는 각성제였다. 그의 강론 한 말씀, 기도 한 줄에 국민들은 절망에서 깨어났고 희망을 키웠다. 기도로 차마 완성되지 못한 그의 입놀림 하나까지도 찬둥번개가 되어 독재자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길고 긴 군사독재 시절엔 그와 명동성당은 이나라 반독재 투쟁의 모태였고, 군사정권도 차마 범하지 못한 성소(聖所)였다. 탄압을 피해 숨어든 민주인사와 학생들은 그의 품에서 안도했고 민주화 의지를 다졌다. 원주의 지학순 주교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자 정보부로 한달음에 달려간 추기경의 결연한 모습은 국민들의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횃불이었다.
 누구도 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에 입을 열기 꺼려할 때 추기경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나타나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고 역설했다. 또 박종철 군이 경찰고문실에서 “탁” 쳤더니 “억”하고 죽었을 때도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온유하고 그윽하지만 이웃이 고통받을 때 불같이 일어선 분이다.
 서로 반목 질시하는 종교간 장벽을 온몸으로 허물었다. 추기경은 심산 김창숙 선생 묘소에서 여섯 차례 큰절을 올려 격식과 관습을 털어냈다. 어설픈 개신교가 제사를 금지한 것에 비하면 추기경은 이미 그 경지를 넘어섰던 것이다. 추기경이 동국대 불교대학원 특강을 통해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강조한 것도 `내 종교가 귀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는 믿음의 실천이다. 그의 “겸손하지 못한 일부 사제들은 카리스마를 사제복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부처님 불상을 모시고 가는 당나귀가 사람들 절을 받고 부처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개탄했다. 요즘 툭하면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 종교인들이 들어야 할 소리다.
 추기경은 군사독재가 끝나자 성소로 돌아왔지만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은 국가정체성을 흔들었고 그의 영혼을 괴롭혔다. 추기경은 다시 입을 열어 두 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미동맹 경시를 질책했다. 광우병 촛불집회 자제도 촉구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의 “추기경은 시대에 뒤떨어진 분”이라는 비판이다. 추기경은 “그 비판은 옳은 지적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많은 칭찬을 들어왔던 나의 삶에 비판과 욕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받아들였다. 믿음의 질을 색깔로 측정할 수 있다면 젊은 신부의 것은 남루한 색이 아닐까?
 추기경은 언젠가 어머니를 회상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신 분, 나를 있게 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나를 위해서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목숨까지라도 바치셨을 분…!” 어머니 앞에선 이처럼 여리고 어린 분. 우리는 이제 추기경을 엄마 품에 돌려드려야 할 때가 됐다. “추기경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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