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결혼식 - `죄수들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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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결혼식 - `죄수들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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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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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원 넘는 결혼비용은 제살 깎아먹기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요즈음 돈 좀 있는 집의 결혼식을 가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길게 늘어선 하객들과 화환들, 7~8만원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음식, 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과 조명….  결혼식 비용으로만 조금 많이 썼다 하면 1억원도 넘어 간다고 하니 헤픈 씀씀이에 혀가 끌끌 차일 정도다. 고급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결혼식 때문에 주변 교통이 마비되고 축의금 대열이 몇백미터 장사진을 치는 꼴불견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렇긴 해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결혼식 한 번에 그 많은 돈을 써야 하나. 훨씬 더 유익한 용도가 많을 텐데 왜 저렇게 낭비를 할까. 이런 의문과 안타까움이 꼬리를 문다. 가족외에 아무도 모르게 자식 결혼시켰다는 게 미담이 되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호화 결혼식은 `죄수들의 딜레마’적 성격을 가진다. 서로가 마음을 합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에도, 해로운 결과가 초래되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죄수들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호화 결혼식이 그렇다. 각자 자기 돈 내고 결혼식을 시켜야 한다면 지금처럼 결혼식에 큰 돈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 비용을 남들이 내는 축의금에 상당 부분 의존하다 보니, 최대한의 하객을 불러 모으게 되는 것이다.
 남의 자식 결혼식에 가는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 심정이 된다. 초대받은 결혼식에 안 가볼 수도 없고, 일단 가려면 축의금을 들고 갈 수밖에 없다.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말처럼 남의 자식 결혼식에 많은 돈을 갖다 바쳤으니 자기 자식 결혼식 할 때는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국 모든 사람의 결혼식은 규모가 크고 화려해진다. `죄수들의 딜레마’라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안 써도 되는 곳에 많은 돈을 낭비하게 된다. 이것은 시장의 실패다. 각자의 자율  행동에 맡겨 놓으면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개인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맡겨두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좋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시장의 실패라고 부른다. 호화 결혼의 문제도 그런 면에서 시장의 실패일 수 있다. 서로 마음을 맞춰 남의 결혼식에 축의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결혼식 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혼식  규모는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축의금 시장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전이나 승진한 사람에게 화분이나 난을 보내는 현상도 시장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
 시장이 실패할 때 우리는 쉽게 정부 규제의 유혹에 빠진다.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가정의례에 관한 준칙’을 만들어 남의 혼례에 어떤 선물을 하는 것까지 간섭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선물을 주기 위해 온갖 편법이 등장했고, 보기 흉한 모습들도 많이 봐야 했다. 결국 그 부작용들로 말미암아  `가정의례 준칙’은 폐지의 운명을 맞는다.
 요즈음 우리가 겪고 있는 호화 결혼식도 국가가 나서서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금지하면 또 다시 예전의 그 부작용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의 크기가 의도한 효과를 압도할 가능성도 높다. 호화 결혼식이라는 현상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 규제도 답은 아니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최선의 방책은 저절로 고쳐지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바람직한 축하 방식이 퍼져 나가고 있다. 제일기획 같은 곳에서는 몇 년 전 부터 축의금이나 화분구입 금액을 축하받을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한 뒤 그 영수증을 축의금 대신 전달해 왔다. 서울시에서 시작한 그린 기프트 운동도 그런 내용이다. 새로운 기부금 시장이 낭비가 심한 기존의 축의금 시장을 대체해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는 정부의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의 등장으로 치유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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