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지키기’ 박정희 절반만 따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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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지키기’ 박정희 절반만 따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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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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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의 울릉도 상륙작전
 
 김인만/쟉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가 동해로 시작된다. 동해 1번지는 울릉도와 독도 형제섬이다. 작은 아우가 수평선 너머 고향 바다 들머리를 지키고, 형이 모진 풍랑과 외로움 속에서 그런 아우를 보살피고 지켜왔다. 독도는 울릉도 사람들이 지켜왔다. 1950년대 홍순칠의 의용수비대가 울릉도를 거점으로 했고 그후 독도 경비를 울릉도경찰서에서 담당해 왔다.
 울릉도와 독도는 동해 1번지로 대한민국의 해상 관문임에도 그런 대접을 받기는커녕 육지로부터 멀리 소외되어 있었다. 일본이 독도를 제 것이라고 집적거리고 염장을 질러댄다고 불끈불끈할 것만도 아니다. 국가사회 구성원 저마다의 무관심이 오죽하면 또 그럴 것인가.
 인터넷에서는 5·16혁명의 장군 박정희와 내로라하는 사무라이 기질의 고토 마사유키라는 일본 특사의 `독도 담판’ 이야기가 누리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두 장부는 술자리에서 맞붙어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라고 큰소리를 치는 고토 마사유키가 대가 지불을 조건으로 독도를 흥정하는 수작을 벌인다. 박정희는 쇼와시대 최고 사무라이를 자칭하는 고토에게 “계집애처럼 앵앵거리지 말라”면서 “나는 목숨 걸고 혁명을 한 사람이다. 나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1962년 10월, 박정희는 동해안 화진포에서 해병대 상륙작전 훈련을 참관한 후 주문진으로 이동해 돌연 해군 함정을 타고 울릉도로 갔다. 1962년 10월 11일. 풍랑이 사나워 박정희 일행이 타고 온 해군 함정이 도동항에 접안할 수 없었다. 가랑잎 같은 보트에 몸을 싣고 간신히 상륙했는데, 자칫 큰 변을 당할지 모르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악천후를 헤치고 울릉도를 찾아온 최고지도자를 보고 울릉도 사람들이 깜짝 놀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까까머리, 단발머리 학생들이 박수와 꽃다발로 환영하고 모든 주민과 공무원들이 나와 줄줄이 악수를 나누었다. 박정희는 최고회의 의장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의 신분이었다.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부터 지금까지 울릉도를 방문한 국가 최고지도자는 박정희가 유일하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곳이 독도였다. 그는 1961년 11월 “독도를 정확히 측량하여 토지대장에 등록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특별지시를 했었다. 그에 따라 국토건설청 산하 국립건설연구소(국립지리정보원의 전신) 측량팀이 2개월에 걸쳐 독도의 지형을 측량하고 지형도를 작성했는데, 이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실히 해두는 국토관리 차원의 작업이었다.
  이 `해상의 최전방’에 대한 일련의 국토관리 조치들은 한일협정을 대비한 사전 포석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일본은 국교수립과 청구권자금 앞에 독도 영유권을 들이밀어 대단한 흥정을 벌일 심산이었다. 돈을 줄 테니 독도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춥고 배고픈 후진국의 설움을 벗어나고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박정희는 한일회담에 총력을 집중했다.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국교를 수립하고 청구권 자금을 받아내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일본이 회담 테이블에 갖고 나온 것이 독도 카드였다. 박정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시비에 대해 과거 일본의 침략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빼앗은 게 독도였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로 한일회담이 난항을 거듭하자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미국은 한일 양국이 독도에 등대를 세워 공동 소유하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박정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미국은 다시 독도 문제를 다룰 한일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제의했고, 이것 역시 박정희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일협정을 기회로 독도에 대한 주장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매달렸다. 1965년 6월 협정 문서에 서명을 하는 자리에서까지도 독도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시비하자 국회의원들이 때를 만났다는 듯이 독도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포퓰리즘에는 유비무환의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서울 한복판 숭례문을 지키지 못해 불태우면서 독도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사진은 영락없는 `유비무충’ 수준으로, 참 볼 만한 국가관리 실종의 코미디 장면이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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