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집집마다 반드시 있어야 했기에 달력의 수요는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달력 제작은 인쇄업자의 사업으로는 실패할 위험성이 가장 적은 일거리이기도 했다. 식민지시대 미국에서도 여러 종류의 달력이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이 1732년부터 만들어 시판한 `가난한 리차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은 유명하다.
그는 영국을 비롯한 여러 외국의 속담이나 격언을 모아서 특유의 간결하고도 힘찬 표현으로 고쳐 달력의 여기저기에 한두 가지씩 넣었다. 이것이 크게 인기를 얻어 그 후 2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매년 1만부 안팎으로 계속 팔렸다. 미국 식민지시대의 출판물로서 이처럼 팔린 사례는 그리 많지 않으며, 이로써 프랭클린은 큰 부자가 되었고 사회적으로 출세할 발판도 만들었던 거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달력을 돈 주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업들이나 단체들이 홍보용으로 많이 만들어 배포하기 때문에 남아돌 지경이다. 그러나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우리 농가에서는 한 장에 열두 달이 다 들어 있는 `국회의원달력’밖에는 달력 구경하기 어려웠다. 연말이면 반장이 나눠주던 그 잉크냄새 물씬 풍기던 농가필수품 `국회의원달력’은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시중에 벌써 경인년 달력이 선뵈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때 이른 세모의 허허로움과 함께 문득 한 장짜리 `농사달력’에의 향수가 알싸하게 밀려오는 입동(立冬) 절기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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