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이렇게 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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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이렇게 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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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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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야당 설득, 야당은 표결 결과에 승복 
 
(cfe.org)
 
 말치기도 없었다. 공사장 망치도, 소화기도, 멱살잡이도 없었다. 열띤 `토론’과 조용한 `표결’만 있었다. 미국 하원 이야기다.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안(건보 개혁안)이 마침내 연방 하원을 통과했다. 작년 12월 상원을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안은 3월 21일 하원에서 11시간 가까이 지속된 절충과 토론 끝에 찬성 219, 반대 212로 가결됐다. 이로써 1912년 루즈벨트 대통령 후보가 전 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공약으로 내건 지 100여 년 만에 건강 보험 개혁이 이뤄지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도 사실상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 법안이 실행되면 현재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2000만 명이 추가 혜택을 받게 돼 건강보험 수혜 대상자 비율은 전 국민의 약 95%로 높아진다. 이에 따라 현재 5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무보험자는 2200만 명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다만, 건보 개혁의 성패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라면 3월 말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상원 본회의 표결 후 발효된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고,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면 건보 철회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건보 개혁안에 부정적인 여론도 있기에, 과연 미 유권자들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건보 개혁안 통과는 미국 건강 보험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평가 외에 주목받아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의회 통과 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행동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킨 의원들의 모습이다. 건보 개혁안 통과 과정은 국정 운영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가와 함께 의회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토론, 승복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크게 대립했다. 공화당은 건보 개혁안을 `사회주의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며 전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민주당은 긍정적이었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자칫 건보 개혁안이 물거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는 순간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2008년 대선 당시 건보 개혁을 최대공약으로 내건 오바마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접촉, 설득했다.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적진인 공화당 의원연수에도 참석하고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토론을 벌였다. 민주당 내 반대파를 설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초청해 설득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대국민 연설을 100회 이상 가졌고, 적대적인 극우 성향 폭스 뉴스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막판에는 낙태 반대파의 회유를 위해 낙태시술비용을 연방기금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행정명령까지 약속하며, 극적 타협을 이끌어 냈다.
 하원 본회의장은 미국 정치의 성숙함 그 자체였다. 본회의장에서 시작된 건보 개혁 찬반 토론은 1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각 의원 발언에 할애된 시간은 1분, 반대 의견이 나올 때 야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집기를 집어던지거나 의장석을 점거하는 품위 없는 행동은 없었다.
 투표가 진행되자 공화당 의원들은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당론에 입각한 전원 반대표 행사는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퇴장을 한다든가, 표결을 막는 극단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것이다. 장외투쟁도 없었다.
 미국의 건보 개혁안 통과 과정은 한국 정치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다. 그동안 논쟁이 첨예했던 미 쇠고기 수입 문제, 4대강 사업, 최근 들어서는 세종시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다.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 싸움장으로 돌변했다. 지난해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난투극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법안 토론 과정에서 의사 진행 방해, 의장석 점거 등은 수시로 일어난다. 아예 국회를 버리고 반대당이 집단 농성을 벌이는 일도 많다. 반대되는 의견들은 치열하게 토론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품위 있는 민주주의가 그립다. 한국 정치도 언제쯤이면 `성숙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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