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희망갖고 더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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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희망갖고 더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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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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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신묘년 신새벽 여는 대구칠성시장을 가다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에 생채기를 낸다. 소시민들은 그래도 꿋꿋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며 한발 한발 내닫는다. 삶이 풍족할 때는 인생의 무게를 알지 못하고 건강할 때는 몸의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고난과 아픔에 봉착해 봐야만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엄동설한(嚴冬雪寒) 힘겹지만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2011년 신묘년 (辛卯年)을 열어가는 대구 칠성시장 상인들의 억척스런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편집자 주
 
 
 #칠성시장 들어가기
 60년 역사가 깃들여 있는 한강이남 최대 재래시장 대구 칠성시장.
 2010년 12월 31일 오후 이곳은 2011년을 맞이하는 상인들 손길이 분주한 가운데도 대로변 목 좋은 가게에는 손님들 발길이 이어져 흥이 나고 있는 반면,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상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칠성시장은 분명 외관상 활기차 보였다.
 “꼭 이때만 되면 연말연초 분위기가 어떻고…제발 재래시장 장사 좀 잘된다고 글 좀 써 주이소. 가득이나 장사 메기가 없어 죽겠는데 여기 대놓고 재래시장이 명맥 유지가 힘드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통에 장사가 더 안 되는 것 아닌 교”
 시장 인근 가장 자리에서 과일 노점을 하는 50대 초반 남자 상인의 핀잔을 들으며 칠성시장 맛베기가 시작됐다.
 #풍경 하나
  “배추. 무우가 효자야. 얼마 전 파동으로 배추 무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니까 소비자들이 부추만 찾아서 평소보다 2배 이상 매상을 올렸지”
 청과시장 1층 상가에서 지난 34년 동안 부추를 전문으로 판매하고 있는 주명옥(62·여·한마음 부녀회장·사진왼쪽)씨는 새해에도 예전처럼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한다고 했다.
 주 씨는 “새해에는 하나 남은 딸 짝이나 찾아 줬으면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다”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별것 없다. 애물단지 딸이 시집이나 같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또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부추, 우엉, 영근 등을 재배하던 칠곡군 약목면에 있던 땅덩어리가 없어져 새해부터는 다른 곳 대처 농지에서 농사를 지어서 물품을 조달해야 하는데 예전만큼 소출이 나올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인근에 나란히 차려진 10여개의 채소 가게에는 다수의 손님들이 흥정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재래시장에 장보러 옵니까. 모두 다 큰 유통점 등으로 발길을 옮기지. 그나마 오는 사람들은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껴 본답시고 재래시장에 올뿐이지. 그게 더 미워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질문에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상인의 동문서답(東問西答)식 대꾸가 마치 회초리에 한대 맞아 종아리가 아리 듯 따끔하게 와 닿았다.
 “기자 양반도 대형 마트 자주 들리면서……”
 #풍경 둘
  “말만 잘하면 그냥 드립니더. 생선 사이소.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랍니더...”
 시장 입구 인도변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김화야(73·여·사진 왼쪽)씨는 이 가계에 손님들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자칭 양심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고령의 나이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털웃음으로 되받아 치는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았다.
 “이곳에서 20년을 장사 했는데 이제는 이골이 났어. 이 장사를 통해서 자식 5명을 키워 출가 시켰어”
 이제는 집에서 조용히 자식들 봉양 받으며 쉬어야 할 나이 이지만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다며 힘겨운 웃음을 내 보였다.
 그나마 하루 온종일 이렇게 서서 움직이면서 장사를 해서 잔병이 없는 것 같다는 김 씨의 말이 왠지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생선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근 30년 가까이 과일야채를 판매하고 있다는 60대의 한 여자 상인은 영하의 날씨를 보이고 있는 추위만큼이나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다.
 “가득이나 손님이 없어 근심스러운데 찬바람까지 부니 더더욱 힘겹내요”
 상인 옆에서 한참 동안 장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몇 사람이 흥정만 한 채 발길을 돌리고 10여분이 겨우 지나서야 3000원 하는 귤 한 바구니를 팔수가 있었다.
 “누가 요즘 재래시장을 찾나요.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서 간간히 손님들이 들리지 굴직굴직한 용품은 다 대형 마트 등에서 구입하는 추세 아닙니까”
 #칠성시장 나가기
 어둠이 내리고 저녁 7시가 넘어서자 하나 둘씩 상인들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묵은해의 고단한 몸을 누위기 위해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대구 칠성시장.
 많은 수의 상인들은 예전에 비해 얼어붙었던 지역경제가 많이 녹았으나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것 마냥 조심스러운 세상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칠성시장 지하철 입구 대로변에는 “떨이요 떨이” 라고 외쳐대는 70대 한 노 상인의 목소리는 계속 됐다.
 “새해에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야죠”
 이곳 칠성시장을 떠날 때까지도 떨이의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나이많은 상인의 절규는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기대감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김병진기자 kbj@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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