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 정재모
`가을장마’
  • 정재모
  • 승인 201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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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속의 곡식도 줄어든다’는 기상속담이 있다. 처서우(處暑雨)는 방아를 찧어 챗독에 담아둔 양식마저도 축나게 할 흉년 조짐이라고 본 과장농점(誇張農占)이다. `처서비엔 십리마다 천석 감한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백로에 비가 오면 백리마다 백섬 감수(減收)한다’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 처서에 오는 비가 농사에 얼마나 해로운가를 짐작할 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벼농사에 있어 처서 무렵은 참 중요한 시기다. 맑은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받아 꽃을 피우고 수정이 부지런히 이뤄져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데 갓 피어나기 시작한 벼꽃이 수정도 못해보고 소나기에 씻겨 떨어져버리게 된다면 그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다. 알곡이 영그는 대신 쭉정이농사가 되고 마는 거다.

 어제가 처서. 절기 이름에 값할 만큼 `18년만의 폭염’이라는 더위도 썰물처럼 씻겨갔다. 요 며칠 중부와 남부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퍼부은 초가을 폭우 덕분이다. 무 자르듯 한 퇴서(退署)가 반갑긴 해도 곳곳을 강타하는 게릴라폭우가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벼논이고 채마밭이고 과수원이고 간에 여기저기 몇 바탕 난동을 부리고 간 폭우 뒤끝은 참담하다. 한반도에서 듣도 보도 못한 `가을장마’란다. 그것도 빗발이 거칠고 어지러운 장마다. 중부지방에 뻗어 있던 전선이 그제 밤부터 우리 고장에까지 남하했다. 비껴가기를 바랐던 `처서비’다.
 아무리 쌀값이 헐하다고 해도 풍년이 들어야 사람들 마음도 넉넉해진다. 먹어내는 양이 예전 같지 않아 남아도는 쌀이 천덕스러운지는 몰라도 흉년이 들면 가난한 사람은 고통스럽다. 가을장마와 함께 농산물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만 있다고 주부들은 아우성이다. 연말이면 농산물가격이 더 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식량수출국들의 작황도 나쁘다는 뉴스다. 가을장마의 행티가 한시바삐 물러갔으면 좋겠다. 벼(禾)를 잘 익혀주는(火) 따가운 가을(秋) 햇살이 그립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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