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들은 누런 물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고개 숙인 벼이삭이 두렁을 가리고 지나가는 바람에 물결지우고 있었다. 간간 가을걷이를 하는 곳도 있었다.” 황순원의 `일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농촌 곳곳에서 요즘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이미 가을걷이를 끝낸 곳도 많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하다’라고 해도 추수로 통하는 모양이다.
농촌의 가을엔 `걷이’와 `털이’가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쉰다. `털이’는 열매 털어들이기 이기도 하지만 `도둑’을 뜻하기도 하니 탈이다. 풍성한 곳에 진드기 달라붙듯 하는 존재들이다. 이 농촌도둑들은 거둬들인 농산물을 창고 째 털기도 하고, 숫제 받떼기로 털어버리기도 한다. 길이 잘 닦여 있는데다, 자동차로 기동력도 갖췄으니 도심(盜心)만 꿈틀대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짓이다.
요즘 농촌엔 또다른 `주머니 털이’가 활개 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불법의료시술이다. 돌팔이들은 약물성분조차 알 수 없는 주사를 놔줘가며 돈을 챙긴다고 한다.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일대 어르신 20여명이 당했다는 소식이다. 관절염에 효능이 있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주사를 맞고 나면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농촌에는 어딜 가나 이들 `털이범’들의 놀이터와 다름없는 구석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농촌은 대책도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허망하게 털려야만 하는가? 김용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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