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동화 같은 사랑 얘기가 감성을 자극한다.
늑대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비현실적인 얘기를 1960년대 강원도 한 산골 마을이라는 신비로운 시공간을 배경으로 그럴듯하게 펼쳐놓은 영화가 있다.
영화 `늑대소년’은 미국에서 아들 내외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늙은 `순이’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한국을 방문, 강원도의 한 낡은 집을 찾는다. 순이의 기억은 47년 전의 한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한 사람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폐병을 앓던 순이(박보영)의 요양을 위해 엄마(장영남)와 동생이 함께 공기 맑은 강원도의 이 집으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다음날 헛간 근처에서 때가 잔뜩 낀 채로 짐승처럼 기어다니는 사람(송중기)을 발견한다.
마음씨 좋은 엄마는 이 소년을 거둬들여 씻기고 밥을 먹이고 `철수’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병을 앓느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까칠하기 이를 데 없던 순이는 이 짐승 같은 존재를 처음엔 극도로 혐오하다가 차차 길들일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애견 훈련법’이라는 책을 보고 조금씩 훈련을 시킨 덕택에 철수는 순이의 말을 따르기 시작하고 점점 사람과 비슷한 꼴을 갖추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교감이 깊어지지만, 철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부잣집 아들 `지태’(유연석)의 음모로 숨은 철수의 비밀이 드러나고 군 당국까지 나서 철수를 사살하려 한다.
국내영화 최초 늑대소년이란 이질적 캐릭터 등장, 한 편의 동화 같은 사랑얘기 만들어
늑대소년·소녀 교감하는 대부분의 장면 밝은 빛으로 처리 몽환적 연출 돋보여
대사 한 마디 없이 눈빛으로 사랑·슬픔 말하는 송중기 연기 여성 관객 눈물샘 자극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사람인 순이가 짐승에 가까운 철수를 길들이는 과정이다. 짐승처럼 거칠고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던 철수는 순이의 따뜻한 칭찬과 `쓰다듬기’에 길들며 참을성을 갖게 되고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들로 여심을 자극한 뒤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이기에 결코 지속될 수 없는 두 사람의 가슴 시린 사랑을 보여주며 영화는 슬픈 로맨스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름다운 늑대소년 송중기의 청초한 얼굴은 많은 여성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하다.
한국영화에서는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늑대소년이란 이질적인 캐릭터는 송중기란 배우와 만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했다.
딱 두 장면을 빼놓고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으르렁대는 게 전부이고 눈빛으로 사랑과 슬픔을 말하는 송중기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부족함이 없다.
비현실적이고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판타지인데도 영화는 촘촘한 짜임새로 설득력을 높이고 조연 배우들을 영리하게 활용한 유머 코드로 대중성을 살렸다.
영화에서 재미의 한 축은 늑대와 다름없는 철수가 순이뿐 아니라 순박하고 따뜻한 시골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가는 과정이다. 특히 능청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늑대소년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엄마 역의 배우 장영남은 중간 중간 큰 웃음을 준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 졸업작품인 단편 `남매의 집’(2009)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보여줬던 조성희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부용기자 lby@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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