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숨바꼭질’…2008·2009년 도쿄·서울서 있었던 사건 결합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욕망의 대상이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경제 수준, 사회적인 지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비슷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의 구분은 그대로 계급을 나누는 구획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통 보안 시스템을 갖춘 고급 아파트 단지라고 해서 안전하기만 할까?
　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 도시의 분절화된 일상에서 개개인은 외부의 침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진 자’든, `가지지 못한 자’든 집 안에 있어도 불안을 느낀다.
　영화 `숨바꼭질’은 스릴러 장르의 외피 안에 집에 관한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날카롭게 담은 작품이다.
　고급 카페를 경영하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 분)는 고급 아파트에서 아내 민지(전미선)와 두 아이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지독한 결벽증을 앓고 있다는 것. 그는 집 안의 작은 얼룩, 냉장고 안 음료수병의 미세한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인연을 끊고 살던 형의 실종 소식을 알린다. 형의 짐을 빼달라는 관리인의 말에 그는 어느 항구 도시 변두리에 있는 철거 예정의 낡은 아파트를 가족과 함께 찾아간다. 이웃들에게 물으니 다들 모른다는 대답만 한다. 그런데 이웃집을 탐문하다 그는 집집마다 초인종 옆 벽에 각 가족 구성원의 성별과 숫자를 표시하는 암호가 그려진 것을 발견한다.
　이어 우연히 만난 아파트 주민 주희(문정희)는 딸과 단둘이 사는 그녀의 집에 성수의 가족을 초대한다. 성수가 그녀에게 형에 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기겁하며 성수를 쫓아낸다.
　형에 관해 더 알아볼 심산으로 가족들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사이 그는 휴대전화와 지갑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헬멧을 쓴 의문의 범죄자가 성수의 가족을 따라 들어와 집 안에 침입하려 한다. 민지가 몸으로 막아내 간신히 막지만, 헬멧을 쓴 사람은 계속해서 성수의 집을 노린다.
　집에 돌아온 성수는 자신의 집 초인종 옆에도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암호가 쓰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는 자에 맞서 사투를 벌인다.

스릴러 장르 빌어 집에 관한 현대인의 욕망·불안 날카롭게 담아
현실적 공포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묘사, 간담 서늘케 해

이야기 참신하지만 반전 핵심고리 다소 허술, 개연성 떨어져

　영화는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이 사는 집에 몰래 들어와선 몸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라는 한 아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허정 감독은 2008년 일본 도쿄에서 1년간 남의 집에 숨어 살던 노숙자가 체포된 사건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여기에 2009년 말 서울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집 초인종 옆에 수상한 표식을 발견했다는 주민 신고가 잇따랐던 사건을 결합하기도 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형이 살던 아파트에서 발생한 의문의 범죄 사건과 형의 실종, 주인공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침입자의 위협까지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엮어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에서 `누군가가 몰래 집 안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괴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현실성을 안고 있다. 영화는 그 현실적인 공포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묘사해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특히 슬럼가 같은 아주 허름한 아파트의 어둠과 대도시 화려한 고급아파트의 비현실적인 밝음을 대비시키며 밝음 안에도 언제든지 어둠이 침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불안과 트라우마, 병적인 집착이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탐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있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으로 참신한 이야기와 구성이지만, 반전의 핵심 고리에서 다소 허술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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