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탈락
  • 한동윤
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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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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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명 가운데 43명 낙오자 만드는 고등고시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전국의 변호사가 1만5000명 선을 넘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를 하다 변호사를 개업하면 “개업 1년 이내에 평생 먹을 것을 벌어들인다”는 말이 요즘도 유효하다. 그러나 변호사 중에도 빈부(貧富)차가 극심하다. 변호사 대부분이 법원과 검찰이 있는 대도시에 근무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변호사들의 빈부차이를 7일 실감나게 보도했다. 6월 말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월 회비 5만원을 석 달째 내지 못한 변호사가 884명이라는 것이다. 전체 회원의 8%를 웃도는 `가난한 변호사’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월수입은 7억6000만원의 변호사도 있고, 한 대형 로펌에는 연봉 9억원 넘는 `재벌급 변호사’가 148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이 쏟아져 나오면서 변호사가 1만5000명을 넘어섰고, `변호사 = 부 + 명예’라는 등식은 이미 사라졌다”며 “법조계에 끝없는 보릿고개가 시작됐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에 개업한 법원장급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는 기본이 `억(億)’이다. 복잡한 사건은 2억원, 3억원으로 올라간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연 16억원의 수임료는 결코 많은 규모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앤장, 광장에는 매달 7800만원 이상을 받는 변호사가 각각 148명과 20명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10명 중 9명은 생존경쟁 속에서 도태되고 있다. 서울변회가 집계한 현황에 따르면, 서울변회 회원 수는 2004년 4140명에서 지난해 말 1만476명이 됐다. 동시에 수임료가 뚝 떨어졌다. 기본 수임료 300만원을 고집하던 서초동 법조타운의 `불문율’은 사라지고 150만원에도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가 줄을 섰다. “아무 사건이나 되는 대로 수임하는 `막변(막장변호사)’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자금난으로 휴업한 변호사는 10년 전 364명에서 올해 1441명으로 늘어났다. 취업도 못 한 로스쿨 출신 `백수 변호사’도 쌓여가고 있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법을 꿰찬 변호사들이 범죄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아침에 신문을 펴면 횡령과 주가조작 등으로 사법처리되는 변호사 소식을 자주 접한다. 3000억대 재력가 살인청부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친형이자 변호사도 기업인 납치 공갈협박으로 징역형을 받은 변호사다. 미국에는 “사회를 깨끗하게 하려면 변호사 100명만 자루에 넣어 바다로 던져버리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백수 변호사’가 넘쳐나는 가운데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 고시원에는 무려 20만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오로지 신분상승과 출세를 위해 고시책을 달달 외우고 있다. 그러나 그 실크로드에 오르는 고시생은 44명 중 단 한 명이다. 나머지 43명은 사회적 낙오자로 추락하고 만다.
 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탈락. 요즘 고시촌을 지배하는 유행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집 뒷산 토굴(土窟)에서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는 고시공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고시공부도 가능하고, 남보다 빨리 합격할 수 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행정·외무고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한 달 생활비는 120만~170만원 선이다. 대부분의 고시생은 쪽방형 고시원 대신 에어컨과 세탁기가 완비된 원룸에서 공부한다.
 식사는 매월 식권 값만 20만원 안팎. 영양보충을 위해 몇 번 `외식’을 하면 3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책값도 기본서와 참고서를 제대로 갖추려면 한 해 200만원이 필요하고, 강의 테이프 등 추가교재까지 사면 400만~500만 원이 든다. 특히 시험에 떨어지면 판례나 법률이 바뀌고 출제경향도 달라져 책도 새로 사야 한다. 학원 수강도 필수다. 학원 강사들의 족집게 강의를 무시할 수 없어 큰 돈을 내고 학원을 드나들어야 한다. 학원비가 종합반의 경우 1년 보통 500만~600만원이고, 일대일 강의는 2000만원짜리도 있다. 절간에서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공부하던 시대는 갔다. 고시생 44명 가운데 43명을 사회낙오자로 만드는 고시(考試), 유전합격 무전탈락이라는 사회악(社會惡)의 근원인 고시를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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