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다
  • 이경관기자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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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간장·가방·도자기 등 다양한 공장 산책하며 적은 시간·추억·사람 이야기

 

연합

메이드 인 공장
김중혁 지음 l 한겨레출판 l 248쪽 l 1만3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9쪽)
 뚜벅뚜벅, 거대한 회색 건물로 한 남자가 들어간다. 그는 천천히 그곳을 둘러본다. 마치 산책하듯이. 
 김중혁<사진> 작가가 최근 공장 산책기를 담은 산문집 `메이드 인 공장’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제지부터 간장, 가방, 도자기, LP, 화장품, 맥주 등을 비롯해 김중혁 글 공장까지 다양한 공장을 다니면서 적어간 시간과 추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종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현명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낭만적인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하면 종이를 덜 사용하면서도 더 현명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27쪽)
 그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과 죄책감에 첫 번째 공장 산책 장소로 `제지공장’을 선택했다. 그는 공장 마당에 쌓인 엄청난 양의 재생 펄프를 보고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이는 바다 같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 생활의 거의 모든 일을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해결해 주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종이를 소비하고 종이를 필요로 한다. 종이가 없었다면 현명하지도 낭만적이지도 못했을 거라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공장 산책과 함께 곁들여 지는 그의 추억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된장찌개를 먹고 있으니 된장찌개가 아니라 시간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어쩌면 모든 식사란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시간, 그 음식의 재료가 익어온 시간, 그런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한 끼 한 끼란 무척 소중한 시간이란다. 간장 공장에서 돌아온 나는 검고 투명한 간장을 보며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78쪽) 
 그는 간장공장을 산책하면서 자신을 있게 한 한 끼의 식사와 그 식사를 함께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생각의 끝에 메주와 함께 천천히 발효되면서 늙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 이게 한다.

 “가방을 들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고, 모든 게 준비돼 있는 것 같았다. 가방은 축소한 집 같다.”(82쪽)
 그는 가방공장을 산책하며 자신의 가방중독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적 그에게 `내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의 방도, 책상도 없었다. 그에게 오롯한 내 것은 가방뿐이었다. 가방에 대한 그의 집착은 어쩌면 유년시절 내 것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스스로의 다독임이 아닐까.
 그는 화장품 공장에 들어섰을 때 들리는 기계의 굉음, 수많은 향과 색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면서 `현대의 무기 공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파괴하는 무기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
 현대인들에게 화장은 자신의 외적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해 사람들과 관계를 더욱 부드럽게 한다. 화장을 지우는 행위는 감정의 전쟁터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인공눈물 - 누군가 흘린 눈물을 내 눈에 넣는 기분이다. 누군가 나 대신 울어준 것 같다.” (47쪽)
 그는 공장 산책 사이사이에 한 단어에 대한 그의 짧은 생각과 그림을 함께 넣어놨다. 인공눈물, 음악, 체온계 등 일상의 단어들이 그의 유머와 위트를 만나 매력적인 글과 그림으로 탄생됐다. 읽다보며 자연스레 나오는 깊은 공감 속에서 사물을 대하는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통제실 앞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표어하나가 적혀 있다. `멍하니, 바라보자, 오랫동안, 바라보고, 끈기 있게, 바라보고, 오랫동안 생각하자, 모든 게 끝났으면 빠른 시간에 쓰자’ 표어에 적힌 글이야말로 김중혁 글 공장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137쪽)
 그는 자신의 글 공장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한다. 그가 글감의 재료를 찾아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공장을 산책하듯 이야기한다. 문학의 장르를 넘어 영화와 음악, 미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그의 손을 거치면 브랜드 `김중혁’으로 탄생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양한 공장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삶의 편리를 위해 기계를 만들었고 그 기계로 인해 소외되고 있다. 그에 따른 노동계급의 감소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기계의 역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따뜻함이다. 사랑이다. 타인에 대한 애정, 사물에 대한 관심. 그것은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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