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한자 ‘차 다(茶)’는 세 글자가 모여 한 글자를 이룬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艸 + 人 + 木이다. 결국 사람( 人 )이 풀(艸)이나 나무(木) 잎을 달여서 먹는 차(茶)를 뜻한다는 게 자전의 풀이다. 이칭도 많다. 낙노(酪奴)니 석유(石乳)니 하는 명칭이 예닐곱 개는 되는 모양이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가깝다는 얘기도 되겠다. 마치 요즘 카페가 곳곳에 줄지어 늘어서듯 하는 것과 다를 게 없겠다.
차 이야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해 여러 책에 많이 실려 있다. 문일평의 ‘호암전집’에서 한 대목 옮긴다. “차가 조선에 들어오기는 신라 삼여왕(三女王)의 한 분인 선덕여왕 때이다. 때는 곧 삼국말이니, 중토(中土)에는 차가 유행하던 당초(唐初)에 해당하며 지금부터 약1290년전이다. 차의 전래가 이미 선덕여왕 때에 있었으나, 그의 성행은 이로부터 다시 180년이 지나 흥덕왕 때에 대렴(大廉)이 당(唐)에서 차종(茶種)을 가져다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다. …줄임…이는 차가 정사상(正史上)에 나타난 최초이다. ”
공정하지 않다는 시비가 일어나게된 경위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노 코멘트”라고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길 수밖에 없겠다. 마치 무슨 짬짬이를 꾸며 대표축제가 된듯한 인상을 심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이미 4년 잇달아 최우수 축제로 명품의 자리를 굳힌 터이다. 내년을 기약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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