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장엔 긴장이 흘렀다. ‘정윤회 문건’의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자들의 질문과 박 대통령의 답변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표정은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고, 억양도 다소 딱딱했다. 얼굴에선 살짝 노(怒)한 표정까지 읽혔다. ‘찌라시’라고 해온 ‘정윤회 문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언론들이 연일 추측성 보도를 양산하는 데 따른 불편한 감정으로 보였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도중 동생 박지만 EG회장에 대해 언급했다. 회견 도중 가장 싸늘한 표정과 함께 “개인적 영리와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이간질시켜 어부지리를 노리는 그런 데 말려든 것 아니냐”면서 “바보같은 일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갑고 냉정하기 그지 없는 표현이다.
“바보같은 일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지만씨가 개인적 영리와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바보같은 일’을 저지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에게 어떤 식으로든 연루된 것을 언급한 것이다. 말하자면 ‘정신줄’을 놓았다는 것으로 들렸다. 친동기에게 하기 어려운 비수(匕首)같은 경고다.
특히 박 대통령의 옆을 떠난 지 수년이 되는 정윤회씨를 놓고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됨으로써 정윤회의 국정개입과 농단을 기정사실처럼 만든 지만씨에 대한 분노까지 읽혔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연두회견에 친동생을 언급하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박 대통령은 재작년 2월 25일 청와대에 입주한 이후 동생 지만 씨를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하는 조카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손인 지만씨 아들까지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친인척 비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면도날 같은 의지가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근검과 절약은 무서울 정도다. 그 예가 ‘박근혜 시계’와 ‘대통령 화환’이다. 그 흔하던 ‘대통령 시계’가 박 대통령 취임 후 사라졌고, 결혼식장과 대형병원 영안실에 진열되던 대통령 경조 화환을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이 시계와 조화까지 ‘챙긴다’며 비판적인 글을 실었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본다는 은근한 비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성이다. ‘박근혜’ 이름이 들어간 모든 것은 자신의 분신(分身)으로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장과 행사장, 병원 영안실에 함부로 진열되는 화환까지도 단속해야 안심되는 성격이다. 더구나 ‘박근혜 시계’는 많은 사람이 받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시중에 풀린 건 매우 제한돼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1월 12일 연두회견이 결정적이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적극 감싸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 가능성을 암시했으면서도 그를 붙잡고 싶은 집착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국민들 앞에 연두부터 분노한 듯한 표정을 지은 게 작용한 듯 하다.
박 대통령 집권후 친인척 비리가 터진 것도 아니다. ‘정윤회 문건’은 정말 어처구니없다. 박 대통령에게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인사 잘못이 크다지만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후 김영삼 시절부터 반복된 참사다. 박 대통령이 음주(飮酒)를 하는 것도, 어떤 전직처럼 골프장을 드나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지율이 바닥이다.
국민도 박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보면 뭔가 꽉 막힌 기분이다. 수첩에서 뽑아 올리는 공직인사가 그렇고 ‘문고리 3인방’을 내치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국민들은 가끔 퍼포먼스를 하는 듯한 시장 방문보다 기자실에서 농담도 하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는 그런 박 대통령을 보고 싶은지 모른다. 박 대통령은 좀 더 세상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아무리 억울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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