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떨어져 조금씩 세상에 적응해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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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떨어져 조금씩 세상에 적응해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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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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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싱어송라이터 이/규/호… 싱글 ‘불여우 내 짝’ 발표

 싱어송라이터 이규호(41·사진)는 ‘은둔형’이란 선입견과 달리 시원한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음악 대신 여자보다 곱상한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게 부담돼 언론이나 방송과 거리를 뒀을 뿐, 자신의 이야기에 솔직했고 음악 방향에 대한 소신도 또렷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인데 제 스스로 삶에 치여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린 거죠. 감이 떨어져 조금씩 세상에 적응해 가는 중이에요. 최근엔 라디오에 출연해 라이브도 두 곡이나 한 걸요. 음악 생활이 좀 더 다채로워진 느낌이어서 즐거워요. 하하.”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이규호를 최근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 출신인 그는 지난 20여 년간 낸 앨범이 달랑 두 장이다. 지난해 3월 발표한 2집 ‘스페이드원’(SpadeOne)도 1999년 1집 ‘알터에고’(Alterego) 이후 15년 만의 신보였다.
 그러나 뮤지션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실력자다.
 그는 조동진·조동익이 이끈 레이블 하나음악에서 활동하며 장필순, 이승환, 유희열, 윤종신, 이소라, 이효리, 박정현, 김예림 등의 앨범에 작사·작곡·편곡가로 활동했다. 익히 알려진 윤종신의 ‘팥빙수’, 이승환의 ‘세가지 소원’과 ‘화양연화’, 장필순의 ‘맴맴’, 김예림의 ‘캐럴의 말장난’ 등이 그의 작품이다.
 정작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 발표에는 인색했던 그가 꼭 1년 만인 이달 싱글 ‘불여우 내 짝’을 발표했다. 물론 과거 앨범 공백은 이전 기획사와의 문제가 발목을 잡은 탓도 있지만 지난 디스코그래피를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가 붙은 셈이다.
 “예전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냈다면 지금은 시간이 빨리 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 ‘규호의 꿈’이란 곡 마지막 가사에 ‘하루하루 죽어가네요’란 가사를 멋모르고 썼는데 비로소 제게 그 의미가 다가오는 거죠. 미완성이지만 써둔 곡도 몇백곡은 돼 정리하고 풀어가야 하니 창작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도 있고요. 사람들과 제 음악을 나누고 싶은 바람이 생긴 거죠.”
 ‘불여우 내 짝’은 그가 30년 전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에서 출발했다.
 그는 “한 달 전 어머니가 내게 곰돌이 인형이 그려진 노트 한 권을 줬다”며 “1985년 일기장으로 그때의 내가 쓴 일기와 동시가 담겨 있었다. 나름대로 지은이 이규호라 쓰고 사인도 한 걸 보면 그때도 내걸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보다. 감회가 새로웠다”고 웃었다.
 그중 눈에 띈 동시가 ‘불여우 내 짝’이다. 시를 그대로 가사로 옮기자 동심이 뚝뚝 묻어나는 곡이 태어났다.
 ‘불여우 불여우라/ 내 옆에 있는 짝/ 화가 나면 토라지고/ 신이 나면 능글맞은 내 짝/ 불여우 불여우라/ 내 옆에 있는 짝/ 꼬집기는 최고 실력/ 꼬집기는 최고 실력/ 불여우감이라네~.’
 그 ‘짝꿍’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30년 전 화곡동 ‘국민학교’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는 묘한 경험이었다.
 그는 이 곡의 도입부에 추억의 풍금 연주를 살리고 마치 30년 전의 이규호가 노래하듯 어린이의 목소리도 실었다. 또 다른 버전에는 ‘더 클래식’ 박용준의 딸 승비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피처링을 해 절로 미소가 번진다.
 “우연히 녹음실에 박용준 씨가 왔어요. 건반을 쳐 준다길래 그 김에 승비한테 ‘이거 한번 해보라 하면 어떨까’라고 부탁했죠. 승비가 어린 아이스러우면서도 당돌한 느낌이 있어 눈여겨봤거든요.”
 이번 곡은 전작인 2집을 떠올리면 또 새롭다. 2집의 ‘세상 밖으로’, ‘매일 지구굴린다’ 등에선 서정적인 노랫말과 또렷한 멜로디의 대중적인 작법에 신경 쓰면서도록 풍의 편곡, 전자 사운드의 전개로 반전을 줘 듣는 재미를 줬다. 이처럼 그의 음악을 한 마디로 뭉뚱그리거나 다음 앨범을 예측하기 어려운 건 새로움에 대한 그의 호기심 때문이다.
 “포크는 워낙 좋아했고, 초기엔 팝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모던록, 프로그레시브 록 등 좀 더 록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실험적인 장르이더라도 대중에게 다가갈 연결 고리,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20대 후반의 젊은 밴드 연주자들과 자주 만나는데 새로운 음악과 영상을 많이 보여줘 배우고 있다”며 “작고한 미국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는 울었다. 옛날스럽지 않고 되레 새로웠다. 옛것이어도 처음 본 건 내게 새로우니 흡수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고 말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인 이규호가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청소년기 유재하를 좋아했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회 기념 앨범을 즐겨 들은 덕에 대학교 1학년 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갔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대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경연대회의 심사를 맡은 하나음악 뮤지션들과 인연을 맺은 후 신월동에 있는 그룹 ‘낯선사람들’의 작업실에 드나들며 데모곡의 건반을 치고 음악 공부를 하며 이길로 들어섰다. 그는 조동진·조동익·장필순 등의 선배들이 음악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지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최근에는 하나음악 출신들이 다시 모여 만든 레이블 푸른곰팡에서 발표한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에도 참여했다. 그중 ‘시냇물’이란 곡을 만들고 불렀다. 그는 “시냇물을 상상한 건 나의 원룸, 작업실 같은 작은 공간이었다”며 “그곳의 창문을 보면서 그리움의 근원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강의 근원도 시냇물, 샘물이지 않나. 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이 드물었던 그가 지난해 이탈리아, 북유럽 등지로 여행했다고 하니 이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크고 작은 공연 무대에 서며 시동을 건 그는 오는 27~28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단독 공연을 펼친다. 음악 편곡을 새로 하고 밴드를 꾸리고 가사를 외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웃는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클럽이나 카페에서 노래할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멀티’로 활동해봤어요. 은근 도전 정신이 생기네요. 공연이 끝나면 한 달 동안 여행을 할 겁니다. 여행을 통해 비워내면 음반 내고 공연하는 모든 것이그리워지죠. 앞으로 좋은 인연들과 예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싶어요. 뮤지션으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근원이 다양해져야 하니까요.”
 그리고 소신이 담긴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금 저의 작은 움직임이 가요계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란 바람이 있어요. 선배들의 말씀처럼 대중이 찾지 않는다고 값어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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