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과(不貳過)
  • 김용언
불이과(不貳過)
  • 김용언
  • 승인 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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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덩그러니 남은 나무 밑동을 보면 생각나는 게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이 푸념, 저 핑계를 대는 사람에게 나무는 가진 것을 모두 내준다. 밑동만 남도록 모든 것을 희생한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 다’는 측면에서 보면 잘 생긴 탓에 겪은 수난 같기도 하다.
 민요 ‘나무노래’엔 온갖 나무의 특징이 짤막하게 표현돼 나온다. 핵심을 찌르고 위트도 곁들였다. 예컨대 ‘십리절반 오리나무’ ‘평생소녀 대추나무’ ‘휘느러져 버드나무’와 같은 것들이다.  노래는 길게 이어진다. ‘오자마자 가래나무’ ‘방귀뀌어 뽕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입맞췄다 쪽나무’ ‘우물가에 물푸레나무’ ‘그렇다구 치자나무’에 이르면 슬몃 웃음이 나온다.

 문경시가 도심의 가로수들을 마구 베어내 핀잔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경읍 고요리 벚꽃 가로수를 55그루나 베어넘긴 게 지난 9일과 10일이다. 성이 덜 찼던지 지난 12일엔 중앙로 일대 은행나무들에 마구잡이로 전기톱을 들이댔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90그루를 넘는다. 지중화 사업을 쉽게 하겠다는 게 표면에 내세운 핑계인 모양이다. 그러나 숨긴 속셈은 다르다고 한다. 차량 100여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도시미관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보도됐다. 밑동만 남은 사진을 보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도시미관과는 담쌓은 모습이다. 은행나무가 서있던 자리에 차량을 세운들 무슨 경관이 좋아질지도 의문이다. 나무노래를 보면 은행나무는 ‘마주섰다 은행나무’다. 문경에서는 이제 해당 안 되는 소리다.
 주민들의 지청구가 쏟아지자 시청 관계자는 변명하기 바쁘다. “공사를 서두르다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앞으로는 신중히 하겠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불이과(不貳過)란 옛말이 있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무가 통째로 사라졌으니 ‘불이과’를 되뇌어 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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