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준비한다고 산중 암자에서 하숙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시생도 있었고 재수생도 있었는데 많을 때는 16명까지 머물 때도 있었다. 적을 때는 두 세 사람이 있다가도 방학 때가 되면 학생들이 많이 몰려오곤 했다.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나고 오리목에 여린 잎이 돋아나는 봄날이면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처럼 정신도 몽롱하게 흐려질 때가 있다. 한 낮의 암자 안은 적막하다. 따사로운 햇살만 속절없이 쏟아져 내린다.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처럼 외롭다는 생각이 엄습해 올 때도 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면식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강아지가 낯선 강아지를 만나서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서로 몸을 부비듯이 같은 종의 생명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문득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노래 가락도 들린다. 그 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겨본다. 얕은 산등성이 너머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도 있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평평한 초원도 있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화전을 온 것이다. 오라는 기별이 없어도 사람이 그리워 그들 곁으로 다가간다. 아는 얼굴들이 없지만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눈다. 대부분은 먹걸리통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몇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면 더욱 친밀감이 생긴다.
그런 날은 하루를 공치는 날이다. 책 한 줄 읽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 버리지만 그것이 낭비만은 아니다. 흘러 간 시간과 함께 외로움도 싹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다음 날은 더욱 야심차게 책을 읽을 수가 있게 된다. 사람이 혼자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느끼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깊이 있는 만남이 아니라 건성건성 만나는 관계가 되기 쉽다. 알뜰하게 챙기고 나누고 할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과 깊이 아는 것은 다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인기 연예인들 중에도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게 된다.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자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아는 것이 때로는 한 사람을 아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그립다는 것은 존재론적 외로움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그냥 사람이 그리운데서 오는 외로움이다. 그런데 군중 속의 고독, 외로움이란 것은 관계론적 외로움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만 소중하고 내밀한 것을 깊이 나눌 사람이 없어서 오는 외로움이다. 부부로 평생을 살아도 마음을 깊이 나누지 못한다면 외로울 것이요, 소꿉친구로 긴 세월을 함께해도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고 손을 내밀 수 없다면 역시 외로울 수밖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친하다는 것은 단지 함께한 시간의 길이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짧은 시간을 만나도 소중하고 깊이 있는 것을 나눌 수가 있어야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도 만들어가야 한다. 타인이 깊은 사람으로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서고 베풀고 끌어안을 때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상처받고 한 번 멀어지면 회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을은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관계를 깊이 살펴보는 것도 뜻있는 일일 것이다.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