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무섭다”고 입을 모은다. 동생 지만씨 일가를 청와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친인척 관리도 매섭지만 ‘유승민 사태’에서 보듯 한번 눈 밖에 나면 칼같이 쳐내는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심번호에 의한 국민공천제’에 합의한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매섭게 공격받은 것도 박 대통령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7일 ‘정치적 고향’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면서 대구 출신 새누리당 의원을 단 한 명도 부르지 않아 대구출신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았다. 유승민 사태 때 유 전 원내대표를 은근히 편든 대구 의원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憤怒)가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얘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박 대통령이 대구 국회의원들을 ‘왕따’한 대신 안종범 경제수석비서관, 신동철 정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들을 동행시켰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총선 때 대구·경북 출마를 희망하고 있다.
이미 전광삼 춘추관장은 9월 22일 사표를 내고 대구 북구갑에서 뛰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민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일갈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대구 의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박 대통령의 대구·경북 의원 ‘물갈이’ 의도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정치 기반을 굳히려면 대구·경북에서부터 인적 개편을 꾀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략공천’ 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대구·경북의 민심은 어떨까? 지난 9월 30일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에서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된다는 의견이 49%로 조사됐다. 지난 8월 조사(37.3%)때보다 11.7%p나 높게 나온 것이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현역의원 물갈이 여론이 높은 것은 청와대발 대구지역 국회의원 ‘물갈이론’에 자극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의 지역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증거다. 청와대가 ‘전략공천’으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해도 비명을 지르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대구·경북에 관한한 김무성 대표도 청와대의 전략공천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은 이래서 나온다.
대구 출신인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 대구에서 겪은 추석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대구·경북이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게 허울만 좋지 뭐가 남았노? 대구가 이제는 인천이나 울산보다 영 못 한기라.” 방직공장을 운영하다 신천시장에서 식당을 하는 심 모(68)씨의 말이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19년째 16개 시·도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박 교수는 이런 분노가 박 대통령에게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역 정치인들의 무능,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여당 의원들이 질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심한 곳일수록 의원 자질이 떨어지고 대구는 그 중 가장 심하다는 여론도 전했다. 매듭을 지으면 대구의 정치적 왜소화는 이런 무경쟁의 산물이며, 이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게 대구의 민심이라는 것이다.
대구·경북에 절대적 영향력이 있는 박 대통령의 의중과 이 지역 민심을 감안하면 20대 국회의원 공천 결과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하겠다면 하는 사람’이다. 전략공천을 놓고 김무성 대표와 한판 붙는 한이 있어도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구·경북 의원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빌미는 유승민 의원이 제공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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