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드라마입니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드라마를 드디어 한 것 같은 느낌이라 정말 행복해요.”
비단 일흔다섯 노배우의 생각만은 아닐 듯하다.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느낌일 것이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72세 4차원 독거 소녀’ 조희자를 연기하고 있는 김혜자를 25일 인터뷰했다.
“난 인터뷰가 싫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늘 대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연기로 다 쏟아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또 말을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1시간을 꼬박 채웠다.
노인과 ‘꼰대’를 내세운 케이블 드라마가 시청률 5%를 넘기며 청춘들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사건’이다. 연기하는 배우는 행복하고, 보는 시청자는 감동을 받는다.
지난 수십년 ‘한국의 어머니상’을 대표해온 김혜자는 이 드라마에서도 자애로운엄마다. 깔끔하고 경우가 바른, 유복하고 예쁜 우리들의 엄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수줍음도 많고 엉뚱한 면도 많은 발랄한 소녀이기도 하고, 머리 속에서는 망각이라는 병이 퍼져 나가는 치매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런 조희자의 모습은 나비처럼 살랑살랑 날아오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벌처럼 가슴을 꾹 찌른다. 늘 소곤소곤, 조용하지만 조희자의 생각과 처신과 상황은 울림이 큰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빛깔은 슬프다.
김혜자는 “대본에 있는 여자를 어떻게든 표현하려 할 뿐인데 참 쓸쓸하다. 근데 그래서 행복하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조희자를 ‘그 여자’라고 칭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글쎄, 그냥 내가 그 여자(희자) 같은 기분이 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쓸쓸하다. 치매는 뇌가 줄어드는 거라고 하던데 머릿속이 어찌 될까 옛날부터 궁금했다. 그 여자는 조용하게 치매가 진행되는데 이거 하면서도 궁금하다. 머릿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 희자에게 붙은 ‘4차원 소녀’라는 애칭이 배우 김혜자에게도 어울린다는 평가다. 예쁘고 다정다감한,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 내가 그런가? 모르겠다. ‘소녀’는 철이 안 들었다는 얘기인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 같다.
소녀는 모르겠고… 이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한다더니 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걸 느낀다. 나이 먹어서 뭐하나 했는데 이런 드라마 만나 연기하는 건 축복이다. 내가 다시 배우로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근데 그래서 나는 이제 노희경 작가 작품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웃음) 같은 대사라도 나는 다 다르게 한다.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지 않나. 그 차이를 알아보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연기하고 있다.
-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배우 김혜자에게 어떤 작품인가.
▲ 배우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아름다운 드라마, 순하고 희망이 되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하던데 이 드라마가 내게 그걸 다 충족시켜줬다.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걸 이뤄준 작품이다. 내가 그 여자로 인해 쓸쓸한 것도 좋다. 한없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쓸쓸한데, 좋다. 그 쓸쓸함이 좋다. 인생에서 버릴 토막은 없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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