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적벽부를 읽는데 그 벽두에 가로되 <임술지추 칠월에 기망이러니 소자가 여객으로…> 운운하였다. 내 딴에는 기망을 ‘진작부터 (신선놀음을)희망하였던 바’의 뜻으로 해석했었는데 음력 16일을 기망이라 한다는 건 그 후 매부 되는 이에게서 들은 파천황의 신지식이다’. 고대 국어든 한문이든 간에 무소불통(無所不通)이라 자부하며 나중에 스스로를 국보로 자칭했던 양주동 박사가 소동파의 적벽부 속 낱말, 기망(旣望)의 뜻을 처음엔 잘못 알고 있었다는 고백이다.
요즘이야 적벽부가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알려진 문장일뿐더러 한 자 한 자를 꼼꼼히 가르치고 있으니 기망이 열엿새의 한자말인 줄은 널리 알고 있을 터다. 하지만 1903년생인 양 박사는 어린 나이부터 한문과 영어, 심지어 수학까지도 독학으로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그런즉 한글사전도 귀했을 당시 혼자 힘으로 적벽부를 읽었으니 더러는 오역으로 잘 못 안 부분도 일쑤 있었겠다.
이런 낱말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독서의 희열이라면 희열이다. 쇼셜네트워크가 판치는 오늘날 600년 전통의 한글도 버리자는 건지 서슴없이 줄이고 암호처럼 비트는 세태다. 이런 시대에 ‘기망’처럼 곰팡내 풀풀거리는 예스러운 말이 어디에 필요하랴 싶다. 오늘이 마침 소동파가 적벽 아래서 뱃놀이하며 만고 명문 부(賦)를 썼던 날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나라 어문분야 대석학이 가을과 독서를 이야기하면서 한동안 뜻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한 그 ‘칠월 기망’이다. 그래 한마디 객담으로 가을 낌새를 살피면서 올가을엔 메주같이 퀴퀴하고 알싸한 정취 풍기는 옛글에 푹 빠져보리라, 은근히 작심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