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쟁 끝나지 않은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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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쟁 끝나지 않은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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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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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57주년  
포항송골 피해자 유족회`억울함 풀어달라’애탄 호소
 
 
엄밀히 말해 과거는 알 수 없다. 과거는 우리의 체험적 선택이자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주체가 사라지면 과거는 `지나가버린 것’이 된다. 한국전쟁도 57년의 세월이 흘렀다. 민족상잔의 비극도 그동안 무뎌지고 바랬다. 그러나 살아남은 기억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존재한다. 이들은 말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포항시 여남동 송골해변 미군 양민학살의 생존자인 (왼쪽부터)정순덕·박계산 할머니, 최일출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하루전인 24일 현장을 찾아 그때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떠올렸다.  /임성일기자lsi@
 
 
 
 
 
 
 경북 포항시 여남동 어촌마을.
 6·25를 하루 앞둔 바닷가에는 나들이객이 주말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꼭 한바탕 비를 쏟을 것 같은 하늘이었지…”
 박계산(73)할머니가 물기어린 눈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파란 하늘도 바다도 그날은 피빛으로 변했다. 하루아침에 부모·형제가 죽고 살던 집이 잿더미가 됐다.
 박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다.
 포항-안강 전투가 치열하던 그때 할머니는 16살 댕기머리 처녀였다.
 그는 “3000명 양민들이 송골 해변에 거대한 띠를 이루며 피난살이를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전쟁통에 천막도 없었다. 이들에겐 앉은 자리가 곧 생존의 집이었다.
 그러던 중 1950년 9월 1일. 커다란 미 군함 한척이 모습을 나타냈다.
 피해자 최일출(77·포항 환호동)할아버지는 “미군은 우리편이란 생각에 바닷가 코앞까지 배가 있어도 별의심없이 지켜봤다”고 했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비가 내렸다. 피난민들이 어수선해하던 찰나, `쾅’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미 구축함이 미친듯 양민들에게 함포를 내려꼿기 시작했다”는 최 할아버지는 “도망가는 피난민 무리를 따라가며 10발의 포를 쐈다”고 했다.
 이 학살로 여성과 어린이 등 100여명이 까닭도 모른 채 사망했다. 제2의 노근리 사건이었다.
 박 할머니는 미 함포사격으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 2명을 잃었다. 그는 “그날의 생지옥으로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나는 파편을 맞아 평생을 지팡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끔찍한 학살의 주범은 미 구축함 USS디헤이븐호.
 최근 공개된 미 해군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날 포격은 피란민속에 인민군이 있다는 미 육군 정보당국의 첩보에 따라 이뤄졌다.
 그러나 학살 피해자들은 지금껏 어떠한 사과와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송골 피해자 유족회’는 지난 9년간 진실규명을 외쳤다. 이제는 공허한 메아리라도 부르짖을 피해 생존자가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우리를 공격한 미군보다 더 미운게 한국정부다”는 박 할머니는 “죽는 날 편히 눈이라도 감도록 하루빨리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최근에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6·25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1222건을 조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뷰 말미, 반 평생 여남동을 지켜온 김동관(88)·정순덕(78) 피해자 부부는 나즈막히 말했다.
 “죽을 날 가까운 요즘도 그때의 악몽을 꾸는 걸 보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애…”
  /이지혜기자 hok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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