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사람의 마음
  • 경북도민일보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2.0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성은의 사적인 음악노트
박효신의 <해줄 수 없는 일>을 듣고
반가운 예감

나의 학창 시절 중 가장 중요한 TV 프로그램은 ‘이소라의 프로포즈’였다. 자정이 막 넘어갈 무렵, 슬그머니 거실로 나온 나는 숨소리마저 감추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부모님을 깨울세라 볼륨을 최저로 낮춰가면서까지 어렵사리 만났던 가수들을 잊을 수가 없다. 몇몇 뮤지션의 앨범은 지금까지도 아껴듣고 있으니 나로선 절친이라 해도 될 정도다. 그들 중에는 은퇴를 하거나 잠적한 이들도 많다. 자그마치 이십여 년 전 이야기며, 한국대중음악사의 큰 변화를 거친 혼돈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긴 음악이라는 이 신비로운 예술은 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늘 주체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도 있었으니, 그건 음악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말고는 당장에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음악으로 사랑을 배웠고, 사랑으로 음악을 환호했다. 음악은 빡빡한 학창시절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잠시나마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환상이었다. 그런 시절 중 2000년 1월 즈음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던 박효신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건 충격이나 놀라움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먼 미래의 어느 날, 박효신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게 될 거라는 예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

그날 이후 거리 곳곳에서 박효신의 목소리를 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래방에서도 서로들 박효신의 창법을 따라했고, 막 졸업을 앞둔 된 형들은 그의 1집을 장식하는 스카치 염색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럴수록 나는 그런 인기와 유행에 저항이라도 한다는 듯 은연중에 그를 무시하거나 깔보고 싶어 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발라드를 열심히, 그것도 잘 한다는 걸 촌스럽다고 여긴 열일곱 살 무렵이었다. 물론 내가 이런 선입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추구하는 음악은 점차 박효신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는 점점 박효신을 잊으려고 했고, 고등학생인 그가 자정이 넘은 시간 TV에 나와 열창을 하던 그 충격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틀렸다는 걸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동경’의 박효신을 거쳐 ‘좋은 사람’, ‘그곳에 서서’, ‘눈의 꽃’, ‘추억은 사랑을 닮아’, ‘나처럼’……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동안 그가 해온 건 오직 진실한 목소리의 탐구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여태껏 그는 ‘해줄 수 없는 일’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시켜온 거라는 걸, ‘이소라의 프러포즈’가 끝날 무렵의 열창을 지금도 재현하고 있다는 걸, 단 한 번도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해줄 수 없는 일

2022년 새해에 들어 박효신의 1집을 다시 들어본다. 그리고 그가 여태껏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고자 했던 그 마음을 읽어내려고 해본다. 목소리의 무게와 형태, 색과 농도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 시작을 본다. 박효신은 이제 목소리로서의 보컬리스트가 아닌 그 지난한 시간의 힘을 응축한 한 예술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박효신의 1집을 여태 듣게 되는 까닭은 그의 수련과 수행이 아직은 응어리처럼 엉켜 있기 때문이다. 노래라는 행위를 그가 계속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계속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마저 든다.

단 한곡을 제대로 들려주기 위한 애씀이자 단 한순간을 노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이는 음악이 위대할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앞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에게 해줄 수 없는 일은 없었다. 그는 늘 좋은 가수로서 잘 해주고 있었다. 그게 팬을 위한 일이자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걸 음악이라 부른 다는 걸 그도 이제는 알고 있겠지. 나는 지금도 그를 통해서 음악의 사랑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