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옆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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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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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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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라는 단어의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 또는 동반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반려자’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동물에게도 ‘반려’란 단어가 따라붙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각박한 세상에서 동물이 인생의 동반자로 인식이 바뀔 만큼 사람에게 많은 기쁨과 정서적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셋집 건너 한집은 동물을 키운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반려동물이 급증하면서 동물 학대 및 유기라는 부작용이 매일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필자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작년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비탈에 작은 텃밭을 매입했다. 처음으로 가져본 내 땅인지라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작은 농막도 하나 마련했다.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직장에서 퇴근할 때마다 매일 텃밭에 들렀다. 직접 심은 오이며 토마토, 수박이 열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신기하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혼자 껄껄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저 심기만 했는데 채소와 과일들을 자라게 하는 비옥한 대지와, 하늘의 태양과, 바람과, 비를 만든 신께 무한히 감사했다.

내 농막 옆에는 도랑이 하나 있고 그 건너편에 텃밭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밭 주인 부부는 시내에 살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쯤 밭일하러 왔다. 나이는 거의 70세는 넘어 보였다. 노부부의 밭에는 감자며 고추, 들깨가 심겨 있고 언저리에는 제법 큰 살구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그 살구나무 밑에는 생후 6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귀여운 생김새에 하얀 털, 무척이나 똑똑해 보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녀석이었다.

노부부와 마주친 어느 날, 나는 다소 퉁명스러운 어투로 물어보았다. “이 어여쁜 강아지를 왜 여기다 매어 놓았느냐고….” 밭 주인은 “고라니나 산돼지들 못 오게 하려고 갖다 놓았어”라고 했다. 나는 매일 밭에 갈 때마다 그 녀석이 불쌍해서 마트에 들러 통조림과 생수를 사다 줬다. 한 달, 두 달 지나자 그놈은 멀리서 내 차 소리만 들어도 컹컹 짖으며 빨리 오라고 절규했다. 녀석은 통조림 서너 개쯤은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문득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쿠팡에 사료를 시켜 텃밭에 갈 때마다 조금씩 밥통에 부어 주었다. 주인은 그런 나를 왠지 못마땅히 여기는 것 같았다.

사실 그 강아지 밥통은 늘 텅빈 채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물통은 시퍼런 이끼에 날벌레들이 잔뜩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물마저도 말라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큰 생수 1병을 부어 주면 거의 다 마시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료가 떨어져서 집에 고양이가 먹던 사료를 갖다 주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고양이 사료를 더 잘 먹었다. 녀석이 사료를 다 먹고 나면 우리 둘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지난겨울 그 추위를 이 허술한 판잣집 아래에서 어떻게 견디었냐고, 푸른 산천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목줄에 매여 2m 앞만 맴돌 수밖에 없는 너는 답답하지 않냐고, 이제 장마 시작인데 땅바닥 젖으면 밤새 눅눅해서 어찌 자느냐고, 맑은 날 밤하늘에 달뜨고 별들 무수히 떠오르면 외로운 너는 무슨 생각 하느냐고….” 내 말에 녀석은 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꼬리만 연신 흔들어댔다.

지난 수요일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밭에 가는 길에 사료를 부어 주었다. 그 녀석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틀림없이 조금 더 달라는 눈치였다. 나는 매정하게 말했다. “안돼. 그만 먹어. 내일 또 오면 줄게….” 그리고는 이삼일 연신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그래서 텃밭에 가지 못하고 주말이 되어 밭에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밭이 가까워져도 녀석이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밭 입구에 다다랐지만,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사료 봉지를 들고 그 녀석의 허술한 판잣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녀석이 길게 누워 있었다. “아저씨 왔어. 빨리 나와” 여러 번 불러도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리를 잡고 끄집어냈는데 손에 다가오는 느낌이 차가웠다.

그 불쌍한 녀석은 죽어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불과 사흘 전에만 해도 그렇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녀석이 이렇게 죽다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나라고 아저씨가 맛난 사료 가져왔으니 먹으라며 몸을 흔들어도 그 녀석은 말이 없었다. 눈물이 났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주인에게 전화했다.

“강아지가 죽었어요. 빨리 와보세요” 주인이 말했다. “울진 펜션에 가족들과 놀러와 있어서 이틀 뒤에 갈 거야” 나는 허탈하면서도 화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강아지를 어떻게 해요? 제가 묻어줄까요?”

주인이 밭 옆 잡목숲 근처에 묻어주라고 했다.

이름 모를 잡초와 들꽃을 헤집고 땅을 파서 라면박스에 그 녀석을 담아 고이 묻었다. 무덤 옆에 지천인 들꽃 한 주먹 꺾어 올려놓고 남은 사료를 모두 부어 주었다. 그 작은 무덤 옆에 풀썩 주저앉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난 수요일 사료를 더 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실컷 먹도록 그날 다 주고 말 것을…. 미안하다. 미안하다. 저 너머 세상에서는 묶이지 말고 푸른 산천 뛰놀며 훨훨 살거라. 부디 그리 살거라.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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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2023-07-09 20:02:15
방치도 학대임 경기도 외곽 시골은 방치하는경우가 많아서 솔직히 가기싫음 시골부터 안식개선해야함 공무원분들과 지역 이장 , 청년회 부녀회서 적극홍버해서 인식이 바뀌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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