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셋집 건너 한집은 동물을 키운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반려동물이 급증하면서 동물 학대 및 유기라는 부작용이 매일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필자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작년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비탈에 작은 텃밭을 매입했다. 처음으로 가져본 내 땅인지라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작은 농막도 하나 마련했다.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직장에서 퇴근할 때마다 매일 텃밭에 들렀다. 직접 심은 오이며 토마토, 수박이 열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신기하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혼자 껄껄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저 심기만 했는데 채소와 과일들을 자라게 하는 비옥한 대지와, 하늘의 태양과, 바람과, 비를 만든 신께 무한히 감사했다.
내 농막 옆에는 도랑이 하나 있고 그 건너편에 텃밭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밭 주인 부부는 시내에 살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쯤 밭일하러 왔다. 나이는 거의 70세는 넘어 보였다. 노부부의 밭에는 감자며 고추, 들깨가 심겨 있고 언저리에는 제법 큰 살구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그 살구나무 밑에는 생후 6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귀여운 생김새에 하얀 털, 무척이나 똑똑해 보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녀석이었다.
노부부와 마주친 어느 날, 나는 다소 퉁명스러운 어투로 물어보았다. “이 어여쁜 강아지를 왜 여기다 매어 놓았느냐고….” 밭 주인은 “고라니나 산돼지들 못 오게 하려고 갖다 놓았어”라고 했다. 나는 매일 밭에 갈 때마다 그 녀석이 불쌍해서 마트에 들러 통조림과 생수를 사다 줬다. 한 달, 두 달 지나자 그놈은 멀리서 내 차 소리만 들어도 컹컹 짖으며 빨리 오라고 절규했다. 녀석은 통조림 서너 개쯤은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문득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쿠팡에 사료를 시켜 텃밭에 갈 때마다 조금씩 밥통에 부어 주었다. 주인은 그런 나를 왠지 못마땅히 여기는 것 같았다.
사실 그 강아지 밥통은 늘 텅빈 채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물통은 시퍼런 이끼에 날벌레들이 잔뜩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물마저도 말라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큰 생수 1병을 부어 주면 거의 다 마시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료가 떨어져서 집에 고양이가 먹던 사료를 갖다 주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고양이 사료를 더 잘 먹었다. 녀석이 사료를 다 먹고 나면 우리 둘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지난겨울 그 추위를 이 허술한 판잣집 아래에서 어떻게 견디었냐고, 푸른 산천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목줄에 매여 2m 앞만 맴돌 수밖에 없는 너는 답답하지 않냐고, 이제 장마 시작인데 땅바닥 젖으면 밤새 눅눅해서 어찌 자느냐고, 맑은 날 밤하늘에 달뜨고 별들 무수히 떠오르면 외로운 너는 무슨 생각 하느냐고….” 내 말에 녀석은 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꼬리만 연신 흔들어댔다.
지난 수요일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밭에 가는 길에 사료를 부어 주었다. 그 녀석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틀림없이 조금 더 달라는 눈치였다. 나는 매정하게 말했다. “안돼. 그만 먹어. 내일 또 오면 줄게….” 그리고는 이삼일 연신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그래서 텃밭에 가지 못하고 주말이 되어 밭에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밭이 가까워져도 녀석이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밭 입구에 다다랐지만,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사료 봉지를 들고 그 녀석의 허술한 판잣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녀석이 길게 누워 있었다. “아저씨 왔어. 빨리 나와” 여러 번 불러도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리를 잡고 끄집어냈는데 손에 다가오는 느낌이 차가웠다.
그 불쌍한 녀석은 죽어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불과 사흘 전에만 해도 그렇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녀석이 이렇게 죽다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나라고 아저씨가 맛난 사료 가져왔으니 먹으라며 몸을 흔들어도 그 녀석은 말이 없었다. 눈물이 났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주인에게 전화했다.
“강아지가 죽었어요. 빨리 와보세요” 주인이 말했다. “울진 펜션에 가족들과 놀러와 있어서 이틀 뒤에 갈 거야” 나는 허탈하면서도 화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강아지를 어떻게 해요? 제가 묻어줄까요?”
주인이 밭 옆 잡목숲 근처에 묻어주라고 했다.
이름 모를 잡초와 들꽃을 헤집고 땅을 파서 라면박스에 그 녀석을 담아 고이 묻었다. 무덤 옆에 지천인 들꽃 한 주먹 꺾어 올려놓고 남은 사료를 모두 부어 주었다. 그 작은 무덤 옆에 풀썩 주저앉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난 수요일 사료를 더 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실컷 먹도록 그날 다 주고 말 것을…. 미안하다. 미안하다. 저 너머 세상에서는 묶이지 말고 푸른 산천 뛰놀며 훨훨 살거라. 부디 그리 살거라.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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