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민폐기구’ 전락한 지방의회
  • 모용복국장
‘시민민폐기구’ 전락한 지방의회
  • 모용복국장
  • 승인 2024.0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대체 의원들이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의정비를 인상하나요?”

2022년 12월 열린 포항시 의정비심사위원회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는 필자를 비롯한 일부 위원들의 의정비 인상 필요성 주장에 이같이 반박했다. 이 심사위원은 특정 의원 실명까지 거론하며 오히려 의정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서 필자는 의정비 인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당시 포항시의회 출입기자로서 시민의 대변자인 시의원들이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벌이고 활발한 민원 해결사 노릇을 하기 위해선 의정비 인상이 불기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심사위원간 열띤 토론 끝에 결국 당해연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준해 의정비를 인상하기로 결론이 났다.

2022년 1월 포항시의회는 32년 만에 이루어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으로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 본격 시행됐다. 이에 따라 의회사무국 직원들에 대한 독립적 인사권을 행사하고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정한 인사권 독립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또 윤리특별위원회와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운영으로 의회의 책임성과 청렴성을 강화했다. 아울러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의정활동을 지원할 정책지원관을 채용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의회의 전문성과 정책역량 제고를 위한 틀이 마련됐다.

의회의 권한이 막강해진 만큼 시민들은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더욱 뿌리내릴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원들의 역량부족이나 인사전횡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제도 시행 초기 이러한 부작용이 노정된다면 인사권 독립은 오히려 ‘양날의 칼’이 되어 풀뿌리 민주주의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사권 독립 시행 2년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시민대의기구로서 실질적인 권한은 강화됐지만 의원들의 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릇이 좋다고 그 안에 든 내용물까지 좋은 건 아니다. 지방자치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함량미달이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오히려 주어진 권한을 잘못 휘두르면 지자체와 시민들에게 해가 되고 지역발전에도 역행한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92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한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포항시의회가 가장 낮은 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 이는 그동안 포항시의회 의원들이 보인 부적절한 행태에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다. 불법을 동원한 부지 용도 변경에 연루 의혹을 받는 시의원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의원은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정비업체에 포항시 관용차량을 정비토록 압력을 넣어 윤리특위에 회부됐다. 이 의원은 나아가 윤리특위 위원들을 상대로 과메기까지 돌렸다 출석정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포항시의원들의 비위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뇌물수수에 연루되고 불법영업을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포항시민과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관계 공무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예산을 난도질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자행됐다. 지난해 말 포항시가 제출한 흥해읍 북천수 세족시설 설치 예산 1500만원을 시의회가 전액 삭감을 추진했다 주민 반발로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해 9월 ‘맨발걷기 지원조례안’을 통과시킨 시의회로선 이만한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따로 없다.

이번 권익위 종합청렴도 평가에서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지방의원으로 심각한 갑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자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00명 중 15명이 지방의원으로부터 부패 경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유형별로는 갑질이 16%, 계약업체 선정시 부당 관여 9%, 특혜를 위한 부당한 개입 8%, 사적 이익을 위한 정보 요청 5% 등이었다.

권익위 조사 결과 지방의회 종합청렴도는 100점 만점에 68.5점이었다. 지역 주민과 공직자 등 업무관련자가 직접 평가하는 청렴체감도는 더욱 낮아 66.5점에 그쳤다. 앞서 지난달 발표된 행정기관과 공직유관단체의 청렴도 80.5점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집행부 행정을 잘 감시해 시민권익을 보호해야 할 지방의회가 오히려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이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이 정도면 ‘시민대의기구’가 아닌 ‘시민민폐기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모용복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