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0명을 `친일파’로 매도한 공산당식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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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0명을 `친일파’로 매도한 공산당식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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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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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가 47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였다. 주요 방송사를 중심으로 이를 둘러싼 찬반 토론회가 활발하게 펼쳐졌다.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확인되는 여론의 동향은 이 위원회 활동에 동조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종다수 방식의 여론 조사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 여론 그 자체가 낡은 역사의식이나 잘못된 역사교육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 활동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이 지난 20세기와 대화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위원회의 판단은 다음 세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1905년 또는 1910년 대한제국 패망은 소수 반민족 친일파가 나라를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둘째, 일제가 한국을 강제 지배한 그 시기에 친일과 반일 또는 협력과 저항의 경계선은 명확하였다. 셋째, 해방 후 반민족 친일파가 여전히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통에 역사의 정의가 사라지고 정치·사회의 부조리가 심화되었다.
 해방 이후 얼마 동안 한국인들은 이 같은 전제에서 친일파를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는 것이 새로운 국가 건설에 요구되는 필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세월이 6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까지 위의 세 가지 전제가 타당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 또는 대한제국은 소수 반민족 세력이 준동했기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선왕조의 경제는 18세기 중·후반을 정점으로 19세기 말까지 장기적으로 침체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심각한 경제 위기가 조성되었다. 그에 따라 사회적 혼란이 점점 심해졌다. 이 같은 도전을 맞아 조선왕조는 새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 같은 상호인과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가운데, 조선왕조는 개항(1876) 이후의 내외 도전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수의 정치가가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것은 전근대적 역사인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문명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드높일 뿐 아니라 장차 우리 민족이 일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는 오늘날의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닌 한국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안개 자욱한 새벽길의 혼돈이었다.
 1948년 세워진 대한민국이 반민족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거나, 반민족 친일파가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나라였다는 인식도 실제로는 공산당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에 저항했던 정치세력이 과대 포장한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경찰·헌병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했거나, 총독부 관리로 일제 지배정책에 협조했던 악질적인 `부일배’들은 대개 해방 후 지방 단위에서 자생적으로 전개된 우리 민족의 공격을 받아 제거되거나 축출되었다. 이름난 친일파가 대한민국 고위 관리로 등용된 적은 전혀 없다.
 총독부가 구축한 `식민지 국가’(colonial state)의 행정·치안·징세·사법 기능이 대한민국으로 계승된 것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약 12만에 달했던 총독부 각급 관서의 하급관료·경찰·군인·교사·기술직 등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되었다. 그것을 두고 친일세력이 나라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가운데 `식민지국가’를 매개로 서양 기원의 근대문명이 전파되어 왔다. 그 문명을 선구적으로 학습하고 실천한 세력이 있었다. 새로운 문명의 학습을 위해서는 일제와 협력이 불가피하였다. 그렇지만 그 길은 장차 우리 민족이 근대국가로 독립할 길이었다.
 21세기 초 한국인들은 선진사회 진입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인들을 하나의 잘 통합된 문명공동체로 결속하는 역사의식이 필수적이다. 그 새로운 역사의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진지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20세기 우리 민족의 고난기에, 그 억압과 차별의 시기에,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조상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 역사를 두고 소수의 반민족 친일파가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오욕의 역사라고 매도해서야 되겠는가. 친일문제로 더 이상 사회가 소란스러워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그야말로 말단지엽의 문제이다. 
 (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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