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목탑을 세울 때 그 가운데 불탑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기 위해 심주(心柱)라고 하는 나무 기둥을 세운다. 최소 10m 이상 되는 거대한 나무기둥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세웠을까?
그 오래된 의문이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19-1번지 일대 소재 군수리절터(사적 44호)의 백제시대 목탑이 있던 곳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마침내 풀렸다.
아울러 이를 통해 신라건국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린 경주 나정(羅井)의 이른바 `우물’이란 곳 또한 우물이 아니라 팔각형(혹은 원형) 건물의 중심기둥이 섰던 자리였음이 판명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송의정)는 4~6월 군수리절터 중 현재의 목탑지 정중앙 지하에 자리잡은 심초석(心礎石·중심기둥 받침돌)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중심기둥을 일단 수평으로 뉜 다음, 기둥 밑둥을 지하에 위치한 심초석으로 밀어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땅을 파고 들어간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수리 절터 목탑에서 이 방식이 구명됨에 따라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최근 연차 발굴조사를 벌인 경주 나정 유적의 이른바 `우물’ 흔적 또한, 우물이 아니라 기둥 심초석을 안치하기 위해 마련된 시설임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나정 유적 또한 지하 2m 가량 되는 지점에 심초 시설과 같은 흔적이 발견된 것은 물론, 그 한쪽 면에서 지상으로 비스듬히 연결되는 도랑과 같은 시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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