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다
스무살, 가슴깊이 남는 첫사랑…
`건축’과 `사랑’의 상관관계
흥미롭게 담은 색다른 로맨틱 멜로
`집’은 영화속 또다른 주인공
추억의 아이템 곳곳에
90년대 아날로그 감성 자극
스무 살 무렵, 어떤 인연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순백한 감정이 가장 미숙한 방식으로 발산되는 그 시기 첫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괴물’이 찾아온다면 말이다.
가슴을 마구 뒤흔드는 설렘과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머릿속에 박히는 상처.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사랑과 치욕을 견디다 보면 첫사랑이 가져온 `찬란한 슬픔의 봄’은 어느덧 무의식 속에 각인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스무 살 무렵 찾아온 첫사랑과 15년 후 그들이 나누는 후일담을 그린 멜로영화다. 아릿한 첫사랑과 담담한 30대의 사랑을 비교적 담백한 손길로 그린 흔치 않은 작품이다.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분) 앞에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대학 동창생 서연(한가인). 부유한 사모님 `포스’를 풍기는 서연은 고향 제주도에 집을 설계해 달라며 승민에게 부탁한다.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려던 승민은 서연의 제안을 야멸차게 뿌리치지 못한 채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그리고 재건축을 통해 만남이 잦아진 두 남녀는 15년 전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건축학개론’은 감독이 써놓은 빛바랜 비밀 일기를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래서다. 마치 감독의 경험담을 풀어놓은 듯한 이 영화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117분을 단박에 달린다.
감독의 확신이 깊이 배어서일까. 영화는 이야기뿐 아니라 날씨와 조명까지 매우 디테일하다. 버스에 들어오는 모든 햇살을 빨아들이는 듯한 서연의 뒷모습,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함께 듣는 승민과 서연 사이에 멈춰선 공기, 초저녁 어느 시골버스 역에서 행해지는 쭈뼛쭈뼛한 첫 키스의 추억 등에서는 실제 `사연’이 숨쉬는 듯 구체적이다.
영화는 그런 사연을 통해 연애의 흥망성쇠, 그리고 십수 년 후 찾아온 담담한 사랑을 그린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물 흐르듯 교차시키며 사랑의 `기묘한’ 정서를 끝까지 유지하는 게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파수꾼’(2011)으로 각종 신인배우상을 싹쓸이한 이제훈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스무 살 승민을 소화하고, 아이돌 그룹 미스에이의 수지는 청순한 매력을 뽐내며 역시 스무 살의 수지를 연기했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한가인의 매력도 스크린에 돋을새김한다. 건들건들 거리는 `착한’ 눈빛의 엄태웅도 제 몫을 했다.
`저 여자의 진의는 뭘까?’ `고백해야 할까? 만약 한다면 어떻게 하지?’ 등을 놓고 골목길에서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 질투와 기대, 그리고 주정과 토악질과 눈물로 마무리되는 첫사랑의 진통은 관객 각자의 추억을 들쑤실 것 같다. 승민의 연애를 코치해주는 재수생 납뜩이(조정석)의 코믹 연기도 폭소를 자아낸다. 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옛 가요들의 향연도 귓가를 기울이게 한다.
영화는 연기부터 스토리, 미장센(화면구도)까지 별다른 흠 없이 잘 굴러간다. 격정과 담담함을 오가는 편집조차 영리하다. 앞으로 흘러갈 주인공의 격정을 생각한다면 담담한 오프닝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할 만한 막판 강력한 한방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슴까지 울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든 감정의 끄나풀이 적당한 선에서 멈춰 서기 때문이다. 영화는 불편한 감정을 뚫고 진실까지 다가가는 용기를 보여주진 못한다. 영리하게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지만 관객의 심장까지 움켜쥐지 못하는 이유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을 제작한 명필름이 제작했다. `불신지옥’(2009)으로 호평을 얻은 이용주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다.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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