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꽃밭 사이 똥”…인도 빈민가의 자본주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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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꽃밭 사이 똥”…인도 빈민가의 자본주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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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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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저, 강수정 옮김, 반비, 1만6000원

 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하면 2000만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몰려 산다는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빈민촌이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자본주의는 빈민촌이라 해서 비켜가지 않는다. 빈민촌의 삶에도 세계적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비정규직 문제의 고통이 엄습한다.
 빈민촌 가운데 한 마을인 안나와디도 마찬가지. 인도공항공사 소유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한 이 마을은 화려한 호텔 다섯 채 사이에 애처롭게 끼어 있다.
 우아한 현대식 시설 사이에 자리 잡은 이 판잣집 동네를 바라보며 한 거주민은 “우리 주변은 온통 장미꽃밭이죠.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그런 어느 날 안나와디에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다. 외다리 여자 파티마가 옆집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분신자살한 것이다.
 가해자로 옆집 소년 압둘과 누나, 아버지가 지목돼 감옥에 갇힌다. 어머니 제루니사는 가족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부패한 경찰과 의사는 뒷돈 챙기기에만 바쁘고 재판은 기약없이 미뤄진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빈민촌을 벗어나려던 압둘 가족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지난해 발간된 뒤 `최고의 내러티브 논픽션’이라는 찬사를 받은 도시 빈곤 르포르타주 `안나와디의 아이들’이 국내 번역돼 출간됐다.
 빈곤 현실을 생생한 언어로 풀어낸데다 문학적 완성도도 높아 `노동의 배신’을 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지금껏 읽었던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책 중 가장 강력한 고발서”라고 평가했다.

 책의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뉴요커’ 기자 캐서린 부.
 `워싱턴 포스트’ 등에서 20여 년 경력을 쌓은 그는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생생하게 담아내려고 직접 안나와디에 머물며 취재에 나섰다. 2007년 11월부터 2011년3월까지 약 4년간 안나와디의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파티마의 분신 직전과 직후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무려 168명과 반복해 인터뷰할 정도로 치열하게 취재했다. 경찰, 공공 병원, 시체 안치소, 법원 자료 등 3000건이 넘는 공공 기록을 훑어내렸다.
 정교한 취재는 저자의 문학적 감성과 어울리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르포르타주로는 이례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한 것이다. 인물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고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르포르타주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은 좀처럼 활용되지 않는다.
 책에서 누군가의 생각으로 묘사된 부분은 당사자가 저자나 통역자 등에게 실제로 토로한 내용이다. 저자는 당사자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덕분에 이 책은 다른 기록문학에 비해 훨씬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주민들의 목소리와 느낌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압둘 가족을 중심으로 신분 상승을 위해 극우 정당의 하수인이 된 여성, 변화하는 세상을 목격했지만 고지식한 부모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소녀,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해 현실감을 높인다.
 저자는 편견을 배제한 채 빈민촌의 가난과 불행을 그리면서 동시에 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도 면밀하게 분석했다.
 “몇 주 전에 압둘은 이곳에서 한 소년이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다가 손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밥벌이 능력도 그렇게 잘려나갔건만, 소년은 공장 주인에게 빌기 시작했다. `시아브, 죄송합니다. 이걸 신고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때문에 곤란을 겪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50쪽)
 저자는 취재하는 동안 도덕관념을 잃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헛된 꿈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정부의 정책 순위와 시장의 막강한 권위가 세상을 너무 변덕스럽게 만든 나머지, 이웃을 도우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위협받고 심지어 개인의 자유마저 위태로워지는 세상이 될 경우, 가난한 공동체의 상부상조 개념은 무너진다”며 “놀라운 점은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선량하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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