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쉬었지만 영화 만들려는 노력 계속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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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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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감독 수식어 뒤로 하고 침체의 늪 헤매던 장준환 감독, 절치부심 `화이…’들고 돌아오다
▲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 연합

 장준환 감독은 지난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SF 장르 안에 신학, 사회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 이 수작은 그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충무로에선 천재가 나타났다며 쌍수를 들었다.
 하지만 이런 평단의 열광과는 달리 관객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10만 명 안팎의 관객만이 그의 영화를 봤다. 반면 `지구를 지켜라’보다 3주 늦게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그해의 영화로 떠올랐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이자 같은 사무실에서 시나리오를 썼던 두 감독의 운명은 그렇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을 만들며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장준환 감독은 오랜 침체의 늪에서 허덕였다.
 “10년간 쉬었지만 영화를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 했어요. 그동안 제 안에선 여러 심리그래프가 그려졌죠. 여러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지구를 지켜라’보다 영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더 진일보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부담에 한때 힘들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나도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뭔가 보여줄 수 있어’라는 오기도 들었죠. 시나리오 작업을 몇 편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그의 아내는 배우 문소리다), 아이도 생겼고요. 그러다 보니 10년이 훅 흘러갔습니다.”
 10년 만의 복귀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들고 온 장준환 감독은 영화 개봉(10월9일)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휴지기는 그에게 천재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작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그런 부담감만으로 버티기에 10년은 너무나 긴 세월입니다. (웃음) 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풍부하고 단단한 그런 영화들 말이어요. 물론 관객들과 만나야겠다는 부담은 계속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그런 부담감 속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장준환 감독내면에 일렁이던 빛과 어둠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세련되고, 속도감 있던 원작은 장준환 감독의 손끝을 거치며 이런 명암의 깊이를 더했다.
 “이야기가 가진 충격에 비해 시나리오가 너무 세련돼 있었어요. 깊이와 넓이, 한없이 깊고 넓은 것까지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영화로 세상에 내놓으면 제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영화는 무협물의 뼈대 안에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단상들을 집어넣었다. DNA에 대한 인간의 집착, 인류의 진화와 회귀, 악하지만 근원적으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 등 만만찮은 철학적 주제가 장르적 쾌감 속에 버무려졌다.
 “시나리오가 완성단계에 접어들면서 점점 클래식해졌어요. 신화라든지, 비극이라든지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어요. 한국 농촌에서 벌어지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저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잘 섞이면 지역적이면서 보편적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죠.”

 장르적 외피는 달라졌지만 인류와 구원의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이’는 `지구를 지켜라’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류에게 신은 항상 있었죠. 저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지만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종교와 우리의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우리는 뭐예요? 우리 안에 괴물은 뭐예요? 우리는 어떻게 이뤄진 거죠?’ 인류는 절대자에게 늘 이런 질문을 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는 석태(김윤석)와 화이(여진구)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더욱 깊이 있게 구현된다. 특히 들끓는 감정을 삭여야 하는 석태는 끝까지자신의 감정을 참아내며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석태는 DNA적인 욕망이 철저하게 투영된 부분이 있는 캐릭터에요. 화이가 비단자신의 복제가 아니라 그를 넘어서길 기대하죠. 아예 다시 태어나길 바라기도 해요.
 석태에겐 그런 점에서 어떤 슬픈 욕망이 있습니다.”
 장준환 감독도 석태와 같은 인고의 시절을 겪어야 했다. 좀 더 나은 자식(영화)을 낳고자 계속해서 단련해야 했다. 그렇게 골방에서 차기작 구상에 골몰하며 이러저러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끔 성공가도를 달리는 봉준호 감독이라는 존재가 그의 뇌리를 스치기도 했다.
 “당연히 봉준호 감독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었죠. 하지만, 봉 감독이 좋은 영화로 관객들과 꾸준히 잘 만나고 있다는 점은 저에게 위로가 됐습니다. 뾰족한 돌보다는 정으로 쳐서 둥글둥글한 영화들만 나오는 판국에 봉 감독 같은 친구가 영화판에 있다는 게 저에겐 힘이 됐어요.”
 그는 스스로 “느리다”고 말한다. 그렇게 느리게 한발 한발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볼 수 있는 어떤 경지를 향해 뚜벅뚜벅 꾸준히.
 “산에 오르다 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멋진 벌판도 지나고, 형형색색의 꽃도 만나며 큰 나무들도 보죠. 그 등산 자체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물론 즐거움 외에도 산에 오르는 이유는 있죠. 어떤 경지를 보고 싶다는 거죠. 그런 목표가 저를 쉴 사이 없이 뛰게 합니다.”
 첫 작품을 내놓은 지 이제 10년. 조금은 거리를 뒀던 영화가 이제, 그의 전존재를 휘감은 듯 보였다.
 “처음부터 간절히 원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영화광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간절해진 것 같아요. 영화라는 매체, 표현수단, 예술장르 안에서 즐겁고 신나고 후회 없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그 생각이 간절해진 것 같습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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