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눈감은 불의한 시대…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 이부용기자
진실에 눈감은 불의한 시대…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 이부용기자
  • 승인 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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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지음 l 나무옆의자 l 296쪽 l 1만3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부용기자]  “류마티스? 이건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손가락 모양이 아닌 것 같은데.” (22쪽)
 우연한 한마디로 마음의 지옥문이 열렸다.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나무옆의자)의 저자 정재민 판사가 묻는다. 불의한 시대에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서른 살의 판사인 하지환은 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그의 고향이자 그가 판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인 신해시로 내려간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2년 전 그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을 담당했던 손지은 경사. 2년 전 그는 9년 동안 독한 류마티스 약을 먹다 결국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병원으로 찾아가 어머니의 진료기록부를 요청하지만 어머니를 치료한 우동규는 진료기록을 내주기를 거부하다 그가 판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태도가 돌변한다.
 지환은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인근 도시의 의사를 찾아가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고, 우동규가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류마티스 진단을 내려 계속 약을 먹게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우동규의 병원에 다니는 환자 수가 연간 3만명이래요. 신해시 인구가 30만 명 조금 넘죠? 류마티스 유병률이 일 퍼센트 미만이니까 류마티스 환자가 많아야 3000명인 게 정상이지요. 한 도시에 류마티스 환자가 인구의 10%나 되는 곳은 아마 세계적으로도 신해시뿐일걸요.” (35쪽)
 하지환은 우동규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하기로 결심하지만 우동규를 만난 후부터 병원 행정처장, 신해지원장, 고교 선배, 동료 판사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우동규를 고소하지 말라는 회유와 압박이 계속된다. 자칫 고소 사건이 불거지면 판사로서의 앞날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기에 고소장을 제출할지 망설이던 하지환은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그냥 둘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머니 같은 피해자가 계속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고소장을 발송한다.
 “신해성모병원은 신해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종합병원이야. 직원들만 1000명이 넘어. 신해시의 정치인들, 종교인들, 지역 유지들과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어. 선배는 단지 의사 한 명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거야. 이기기도 어렵고 이긴다 해도 선배가 다칠 거야.”(80쪽)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건 담당자에게 온갖 청탁 전화가 걸려왔고, 신해지청 검사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진행 경과를 확인했다. 우동규는 관련 자료를 제대로 넘겨주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환자들을 회유했다.
 경찰은 우여곡절 끝에 수사를 마무리하고 우동규 사기 진료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가 우동규의 유죄를 확신하고 우동규를 기소하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작성하지만 신해지청장은 공소장을 몇 달 동안 결재하지 않다가 다른 곳으로 영전해 갔고, 새로 부임한 지청장은 우동규의 고교 선배로 공소장을 결재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불기소 결정문을 써주었다.
 “사기죄는 자신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재산죄인바, 피의자는 류마티스 관절염 전문의로서 명성을 높이거나 병원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생각으로 이런 행위를 하였을 개연성이 더 높은데, 이러한 이익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어 재산죄인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 피의자가 특정 항류마티스제를 판매하는 제약회사로부터 정기적으로 현금, 여행 경비, 비서 채용 경비를 지원받아온 사실은 인정되나 그러한 지원을 받은 시점 전후에 피의자가 항류마티스제를 처방한 건수에는 큰 변화가 없으므로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 (133쪽)
 한편 공황장애를 겪는 지환은 후배 효린의 충고에 따라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한다. 지환은 정신분석을 통해 내적 갈등의 원인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가지만 정신분석은 그가 놓인 상황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한 의사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의료, 종교, 사법, 언론, 정치 권력을 상대로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한 그가 많은 환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친 우동규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 있을까? 정재민. 나무옆의자. 296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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