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굴레에 묻혀 `선종의 脈’은 간데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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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굴레에 묻혀 `선종의 脈’은 간데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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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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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길은 오직 바른 길을 가는 것”
고우스님, 버스로 이동 중 즉석 설법
CEO형 젊은 스님의 모습에 씁쓸함이

 

육조 혜능(六祖 慧能 638-713) 스님이 30년간 법을 펼친 남화선사(南華禪寺).
 
조계종(曹溪宗)은 중국 선불교 가운데 혜능(慧能·638-713)대사 문하의 선법인 남종선(南宗禪)을 잇고 있다. 조계(曹溪)라는 말은 광둥(廣東)성 조계산 보림사(普林寺·지금의 남화선사)에 머물면서 크게 선풍(禪風)을 일으켰던 곳의 지명이자 혜능대사의 법호이다. 한·중 교류의 해를 맞아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선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마련한 `중국 선종사찰 탐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 탐방은 5일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의 임제사(臨濟寺)를 시작으로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근처 소림사(少林寺), 안후이(安徽)성 천주산(天柱山)의 산곡사(山谷寺), 광둥성 사오콴(韶關)의 남화선사(南華禪寺)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7일간 진행됐다. 일반 불자 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불교계에서 `선(禪)의 전도사’로 불리는 고우(古愚·71) 전 각화사 선원장이 해설자로 동행했다.
 
“가는 길이 잘못되면 문명의 이기가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의 길은 환경이나 조건이 나빠도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소림사가 있는 허난(河南)성 등펑(登封)에서 후베이(湖北)성 성도인 우한(武漢)을 거쳐 안후이(安徽)성 시엔샨(潛山)현에 있는 천주산(天柱山) 산곡사(山谷寺·삼조사)에 이르는 길도 꽤 멀었다. 정저우와 우한의 중간지점인 허베이성 신양(新陽)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7시에 버스에 탑승해 우한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오후 6시30분쯤이었다.
도로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지라 버스는 그대로 `이동 법당’이 되어 고우스님의 설법 장소로 바뀐다. 고우스님은 순례단을 실은 두 대의 버스에 번갈아 올라 마이크를 잡고 선불교를 강의했다. 우한에서 산곡사로 이동하던 중 황스(黃石)시 부근 고속도로상에서 차량폭발사고가 일어나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져 버스가 울퉁불퉁한 일반도로로 우회하는 동안에도 고우스님의 설법은 이어졌다.
“혜가스님은 달마스님을 만나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났고, 나병환자였던 삼조 승찬(僧璨·?-606)스님은 전생에 나쁜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혜가스님으로부터 ’그 죄를 갖고 오라`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두 회광반조(回光返照·밖으로 향하여 구하는 마음을 되돌이켜 자기내부의 불성과 본래 면목을밝히는 것)를 통해 불안이나 죄의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고우스님의 `이동 법당’ 설법이 끝나고 산곡사에 당도했을 때 이 절의 방장(한국의 주지)인 콴룽(寬容·37)스님이 입구에서 환영단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취재진과 홍보용 영상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맨까지 동원한 `준비된’ 환영행사였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고우스님은 선종사찰 순례단에게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격식이라며 환영예식에 응하지 않았다. 평소 부드러운 말투나 행동과는 달리 노선승의 엄격함이 추상같았다.

결국 고우스님의 오랜 도반이자 무문관(無門關·기한을 정해 그 때까지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선방) 수행처로 유명한 천성산 조계암에 주석하고 있는 상현(尙玄)스님과 순례단에 뒤늦게 합류한 철산(鐵山·문경 대성사 선원장)스님이 예의상 환영행사에 응했다.

산곡사의 젊은 방장스님은 이날 중국 불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1988년 출가했다는 그의 명함에는 여러 대학에서 취득한 기업관리학석사, 문학석사, 철학박사의 학력과 함께 안후이성 청년위원 등의 직함이 나열돼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중국 5대 선종 가운데 임제종의 제43대 제자라고 스스로 밝혔으나 한국방문객들의 눈에는 영민하고 의욕에 넘치는 CEO형 사찰 관리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한국의 철산스님으로부터 “삼조스님이 어디에 있느냐” “달마스님은 어디서 무얼 하느냐” 등 질책어린 질문을 받고 당황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오랜 기간 맥이 끊긴 선불교의 종주국이 이제는 거꾸로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선(禪)을 배워가야 할 형편에 놓여 있음을 젊은 스님은 보여줬다.

안후이성에서 후베이성의 우한 쪽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황메이(黃梅)현 쌍봉산(雙峰山)의 사조사(四祖寺)는 도신(道信·580-651)선사가 30년간 주석한 곳이다.

거기서 10여km 떨어진 곳에 홍인(弘忍·594-674) 선사가 머물렀던 빙무산(憑茂山) 오조사(五祖寺)가 있다.

홍인 선사가 설법했던 동산의 오조사는 중국 선종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까닭에 이른바 `동산법문(東山法門)’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홍인선사의 스승인 도신선사를 동산법문의 초조(初祖)로 부른다.

무엇보다 신라 출신 법랑(法朗·632-?)스님은 도신선사의 4대 제자로 꼽힐 정도였으며, 도신선사의 전신을 모신 사조사의 비로탑 안에는 법랑스님의 입상이 함께 있다. 법랑스님의 문하에 있던 신행(神行·704-779)스님이 다시 중국에 가서 선(禪)을 배워와 전파함으로써 훗날 한국불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기원이 됐으니 도신선사와 한국 선불교의 인연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쌍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사조사는 근래에 복원되어 규모가 크고 대밭으로 둘러싸인 경관도 좋은 편이다. 도량의 오른쪽 산등성이에 조성된 사조탑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면 시야가 확 트일 뿐 아니라 좌우 산줄기가 포근하게 감싼 명당에 사찰이 조성돼 있음을 보게 된다.

오조사에는 홍인선사의 출생 이력에서 연유한 듯 `성모전(聖母殿)’이 따로 지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찰의 육조전에는 도신선사의 제자였던 혜능 행자가 방아를 찧던 자리가 보존돼 있고, 왕대밭이 조성된 사찰 뒤편에는 도신선사가 혜능에게 몰래 법의를 전해줬다는 수법동굴 등이 남아 있다.
 


황메이(黃梅)현 쌍봉산(雙峰山)의 사조사(四祖寺)는

도신(道信·580-651)선사가 30년간 주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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