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아닌 ‘변방의 존재’에 주목하다
  • 이경관기자
중심이 아닌 ‘변방의 존재’에 주목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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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최윤필 기자 ‘바깥’ 타이틀 연재 글 모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최윤필 지음 l 글항아리 l 1만3500원 l 351쪽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바깥에서 만난 이들의, 말과 세상살이의 어눌함이 나의 둔함을 감싸고 이끌어 이 연재가 이어져왔다, 그들을 찾고 또 만나러 다니면서 나는 꽤 오래전부터 ‘꿈’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들은 꿈을 꾸는 이들이었고, 나는 그 꿈을 엿보며 멋대로 해몽이란 걸 한 셈이다.”(8쪽)
 변방(邊方)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고요하다. 그러나 결코 잦아들지 않는다.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 즉,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주목한 사람이 있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 그가 수 해 전 신문에 ‘바깥’이라는 타이틀로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출간한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이 책은 실버극장을 꾸려 가는 극장주, 퇴역마, 택배 일을 하는 연극배우, 군무 발레리나 등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동물, 사물 등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저자가 쫓은 바깥은, 현 사회의 시선에선 마이너 인생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시선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그들은 꿈을 이룬,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막바지로 가면서 대사 반 흐느낌 반이었고, 객석의 훌쩍임과 헛기침도 따라 빈번해졌다.(…)평균 연령 칠십대는 됨 직한 관객들은 유서 깊은 신파의 위력 앞에 파문처럼 흔들렸고, 그 물결은 ‘한 냉소 한다’던 사십대 초반의 감성까지도 적셨다.”(21쪽)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 자리한 ‘허리우드극장’. 70~80년대 블록버스터 개봉관으로 날렸지만 대기업이 복합상영관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산업을 잠식한 뒤, 갈 곳을 잃다 현재 ‘실버극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영화를 보며 옛 추억의 향수를 되짚는다. 이곳은, 자본의 논리로 이어지는 천만관객의 시대와는 동떨어져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이제 더는 힘든 훈련도, 승부의 스트레스도 없다. 세상은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대신 아비보다 나은 자손을 잉태시키라고 말한다. 녀석에게 허락된 운신의 공간은 턱없이 비좁아졌지만, 누리게 된 시간의 부피는 한없이 확장됐다. 그래서 녀석은 행복할까.”(53쪽)

 경주마는 등수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는 일본에서 경주마로 활동하다 성적이 좋지 않아 한국에 팔려왔다. 한국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그것도 잠시 슬럼프에 들어섰다. 슬럼프가 길어지자 사람들은 다이와 아라지의 은퇴를 들먹였고 마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경주마는 사력을 다해 달렸다. 경주마는 그렇게 2년여 가까이 더 달리는 삶을 살다 무대에서 떠났다.
 그는 “기록 잘 나오면 좋고, 힘들 때는 정말 싫고, 좋을 때보다 싫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수영이 좋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도대체 뭔 말이냐고 물었더니 또 빙긋 웃는다. 그가 지닌 독기랄까 근성이랄까 하는 것들이 드러난다면 그 스밈의 무늬 역시 저런 숫된 미소와 어수룩한 고백의 형식이 아닐까 싶었다.”(125쪽)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 배준모 선수. 국내에서는 수영으로 손 안에 꼽히는 그지만 사람들은 그를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로 기억한다. 기록으로 결정나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박태환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속상 할 법도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더 연습에 매진한다. 그 무던한 노력이 국가대표 배준모를 만든 것이 아닐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고 발버둥치는 대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뚝심이 아름답다.
 “아마도 그 책들은 책공장에서 출판사 창고로 옮겨진 뒤 해마다 조금씩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다 결국 이곳, 책의 도살장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정결했으나 그들이 지닌 위엄은 권력을 찬탈당한 어린 임금의 눈빛처럼 애잔했다.”(145쪽)
 책은 이 시대의 진정한 ‘바깥’이다. 손 안에 전 세계 정보가 담긴 지금, 독서인구는 줄어들 대로 줄었다. 책은 더 이상 지성의 척도가 아니게 됐다. 철학과 사회에 대해 논하는 양서들은 절판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그러한 책들의 죽음을 관찰한다. 죽음을 앞둔 책들의 마지막 시선은 애처롭다.
 저자는 이외에도 마을영화라는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영화감독, C급 인디밴드, 탈북청소년 학교 교장, 시간강사, 우표 등에 대해 서술하며 그들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소외와 애달픔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의 향기가 우리를 쉼 없이 바깥으로, 변방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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