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최윤필 지음 l 글항아리 l 1만3500원 l 351쪽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바깥에서 만난 이들의, 말과 세상살이의 어눌함이 나의 둔함을 감싸고 이끌어 이 연재가 이어져왔다, 그들을 찾고 또 만나러 다니면서 나는 꽤 오래전부터 ‘꿈’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들은 꿈을 꾸는 이들이었고, 나는 그 꿈을 엿보며 멋대로 해몽이란 걸 한 셈이다.”(8쪽)
변방(邊方)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고요하다. 그러나 결코 잦아들지 않는다.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 즉,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주목한 사람이 있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 그가 수 해 전 신문에 ‘바깥’이라는 타이틀로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출간한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이 책은 실버극장을 꾸려 가는 극장주, 퇴역마, 택배 일을 하는 연극배우, 군무 발레리나 등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동물, 사물 등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저자가 쫓은 바깥은, 현 사회의 시선에선 마이너 인생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시선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그들은 꿈을 이룬,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막바지로 가면서 대사 반 흐느낌 반이었고, 객석의 훌쩍임과 헛기침도 따라 빈번해졌다.(…)평균 연령 칠십대는 됨 직한 관객들은 유서 깊은 신파의 위력 앞에 파문처럼 흔들렸고, 그 물결은 ‘한 냉소 한다’던 사십대 초반의 감성까지도 적셨다.”(21쪽)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 자리한 ‘허리우드극장’. 70~80년대 블록버스터 개봉관으로 날렸지만 대기업이 복합상영관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산업을 잠식한 뒤, 갈 곳을 잃다 현재 ‘실버극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영화를 보며 옛 추억의 향수를 되짚는다. 이곳은, 자본의 논리로 이어지는 천만관객의 시대와는 동떨어져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이제 더는 힘든 훈련도, 승부의 스트레스도 없다. 세상은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대신 아비보다 나은 자손을 잉태시키라고 말한다. 녀석에게 허락된 운신의 공간은 턱없이 비좁아졌지만, 누리게 된 시간의 부피는 한없이 확장됐다. 그래서 녀석은 행복할까.”(53쪽)
그는 “기록 잘 나오면 좋고, 힘들 때는 정말 싫고, 좋을 때보다 싫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수영이 좋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도대체 뭔 말이냐고 물었더니 또 빙긋 웃는다. 그가 지닌 독기랄까 근성이랄까 하는 것들이 드러난다면 그 스밈의 무늬 역시 저런 숫된 미소와 어수룩한 고백의 형식이 아닐까 싶었다.”(125쪽)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 배준모 선수. 국내에서는 수영으로 손 안에 꼽히는 그지만 사람들은 그를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로 기억한다. 기록으로 결정나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박태환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속상 할 법도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더 연습에 매진한다. 그 무던한 노력이 국가대표 배준모를 만든 것이 아닐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고 발버둥치는 대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뚝심이 아름답다.
“아마도 그 책들은 책공장에서 출판사 창고로 옮겨진 뒤 해마다 조금씩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다 결국 이곳, 책의 도살장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정결했으나 그들이 지닌 위엄은 권력을 찬탈당한 어린 임금의 눈빛처럼 애잔했다.”(145쪽)
책은 이 시대의 진정한 ‘바깥’이다. 손 안에 전 세계 정보가 담긴 지금, 독서인구는 줄어들 대로 줄었다. 책은 더 이상 지성의 척도가 아니게 됐다. 철학과 사회에 대해 논하는 양서들은 절판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그러한 책들의 죽음을 관찰한다. 죽음을 앞둔 책들의 마지막 시선은 애처롭다.
저자는 이외에도 마을영화라는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영화감독, C급 인디밴드, 탈북청소년 학교 교장, 시간강사, 우표 등에 대해 서술하며 그들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소외와 애달픔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의 향기가 우리를 쉼 없이 바깥으로, 변방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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