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인 주류로”… 외면하고 싶은 우리네 현실 그려
  • 이경관기자
“내 아인 주류로”… 외면하고 싶은 우리네 현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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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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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작가 두번째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l 한겨레출판 l 461쪽 l 1만35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나는 달린다. 네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음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일상이고, 그것이 인생이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 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다 가게 해주고 싶었다.”(90쪽)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정아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이 소설은 사교육이 난무하고 욕망이 들끓는 강남, 그중에서도 ‘잠실’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잠실은 서민들의 거주지였던 주공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낯선 도시다. 소설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17명의 사람들의 일상을 주목한다.
 “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청운의 뜻을 품고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로스쿨 등록금을 걱정했지,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진 않았다. 올 초에 하남 집을 뛰쳐나온 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다. 과외, 편의점 알바, 고깃집 서빙 등 손에 잡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이렇게 벌어도 카드 회사에서 빌린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물고, 책값을 대고, 방세에 식비와 교통비, 통신요금을 내면 남는 게 없었다.”(370쪽)
 소설이 가장 먼저 주목하는 인물은 ‘서영’으로 시장 뒤편 빌라촌 반지하 셋방에 사는 여대생이다. 그녀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자가 불어가던 어느 날 그녀는 매춘을 암시하는 전단을 보고 원치 않는 알바를 시작했다.
 서영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청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연예,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을 포기한 ‘7포 세대’. 청춘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질릴 대로 질렸다. 더 이상 아프다간 곪아 터질 것만 같다. 서영 역시 우리네 청춘들과 다르지 않다. 꿈을 위해 가족을 뒤로한 채 독립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고 돈이 없어 하루 밥 한 끼도 녹록지 않다. 

 “단지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너머로 보이는 한강은 미세한 떨림도 없이 잔잔했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 시원스럽게 솟은 아파트 건물들은 세련된 직선미를 유감없이 뿜어냈다.”(295쪽)
 소설은 고층아파트에 살며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를 둔 지환엄마, 해성엄마, 경훈엄마, 태민엄마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자신의 이름보다 지환엄마로 더욱 많이 호명되는 ‘수정’은 신분상승 욕망을 가장 인간적으로 품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전문직 남편을 둔 잠실 엄마들 사이에서 그녀는 신분상승을 위해 아들 ‘지환’의 교육에 몰두한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남편과의 사이는 서먹하기만 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아파트를 살 것이다. 착하고 잘 웃는 여자를 만나 살림을 꾸릴 것이다. 아이를 낳아 이런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것이다.” (289쪽)
 소설에서 또 주목할 만한 인물은 지환의 과외교사 ‘승필’이다. 명문대 지방 캠퍼스 출신인 그는 이혼남으로 빌라촌에 살고 있다. 헤어진 전처가 통역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본 뒤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과외에 나섰다. 그러다 지환을 가르치게 되고 지환엄마로부터 여러 학생들을 소개받았지만 스펙을 속였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이외에도 가장 잠실엄마다운 해성엄마 ‘유미’와 기센 엄마들 사이에서 힘을 잃어가는 학교 교사 ‘미하’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서로 출발선이 달랐던 우리네 이웃들의 계급 상승 욕구가 담겨있다.
 2015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과 학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고 청춘들의 꿈은 정규직 일자리를 갖는 것이 됐다. 이 소설은 외면하고 싶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달팽이를 보는 지환을 통해 아직 세상은,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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