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여섯 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지음 l 창비 l 97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차가운 겨울바람 끝에 내려앉은 어둠이 그리는 풍경과 마주한 적이 있다.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그렇듯 허름한 국밥집이 있었다. 종종걸음 치는 국밥집 아줌마가 내려놓은 뜨거운 국밥을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분주함이 기억 끝에 남아 시렸다.
“터미널 귀퉁이에/언 국밥집/꼬옥 짜 던져둔 행주처럼/언 국밥집/늙은 장사꾼이/털썩/들앉은 국밥집/눈보라는 빙빙/고드름을/둘러 감는/이경(二更)/객지/막버스에 쫓겨/국밥을 말려다/먹다 남은,/식은 밥 줘요,/촉박하게 외치는/식탁도 추운 국밥집/창유리 너머/만산(滿山)에/식은 밥덩이 같은/눈덩이/시퍼런/눈덩이”(‘종점’ 전문)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인 문태준 시인이 최근 여섯 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펴냈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대상과 세계에게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라고 밝혔듯 비유를 절제하면서 세계와 대상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이러한 특징은 3부 연작시 ‘드로잉’에서 잘 나타난다. 14편의 연작시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 선명하게 그렸다.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 시원스럽다.
총 4부로 나눠 61편의 시편이 담긴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는 세계를 먼발치서 바라보며 넓은 마음으로 품는다.
표제시인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은 죽음을 삶의 원리 혹은 존재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생각이 짙게 묻어난다. ‘당신’을 통해 ‘나’의 미래를 읽는 화자를 통해 인간에게 죽음을 언제나 일상과 가깝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껴안으며 애도한다.
“시골길을 가다 차를 멈추었다/백발의 노인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노인은 초조한 기색이 없었다/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가는 속도만큼/천천히 건너갈 뿐이었다/그러다 노인은 내 쪽을 한번 보더니/굴러가는 큰 바퀴의 움직임을 본떠/팔을 내두르는 시늉을 했다/노인의 걸음이 빨라지지는 않았다/눈이 다시 마주쳤을 때/우리는 가볍게 웃었다”(‘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전문)
그는 시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에서 인생의 속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시는 빠름이 당연시 여기지는 이 시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백발노인의 걸음과 그가 건너기를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 삶의 모습인지도.
그의 오랜 친구인 소설가 김연수는 추천의 글에서 “나는 내가 좋다고 선언하는 시. 어때? 좋아? 그러게. 좋네. 좋아. 계속해봐. 그렇게 먼 훗날 기쁨이 될 기쁨의 시가 여기에 있다”고 썼다.
흔들리는 인생 끝에 너와 나의 마지막 얼굴은 어떠한 모습일까. 떠올린다. 백발에 가볍게 웃는 모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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