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 경의선 열차타고 고향땅 밟아볼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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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 경의선 열차타고 고향땅 밟아볼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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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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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원복규씨, 월남이후 60년 간직해 온 소망 밝혀
 
 
 “남북 열차 시험운행 소식에 경의선 타고 어릴 적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꿈을 꿉니다”.
 실향민 원복규(76·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사무총장)씨는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16일 북한의 고향땅에서 살던 까마득한 날들을 회상하며 월남이후 60년 동안 간직해 온 소망을 밝혔다.
 1931년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읍 욱동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되던 1947년 고향을 등지고 가족들과 월남하기 전까지 고향에 살면서 종종 이용했던 경의선을 비롯한 열차에 얽힌 추억의 실타래도 풀었다.
 그는 “열살짜리 국민학생이던 1941년 여름방학 때 중국 산서성에서 장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함께 경의선을 타고 중국 베이징에 갔던 일이 있다”면서 “베이징에서 산서성 가는 열차가 끊어져 어머니와 함께 열차를 다시 타고 이틀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 때는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을 때 여행증명서 확인을 하긴 했지만 어른들은 기차를 타고 시나브로 중국을 왔다갔다 했다”면서 “국민학교 졸업반 때는 함흥 영생중학교 진학을 위해 열차로 평양과 원산을 거쳐 시험치러 간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고향땅을 두고 야반도주하듯 떠나온 월남의 아픈 기억도 되살렸다.
 그는 “부친이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땅을 많이 사 놓았다가 토지개혁이 시작된뒤 3정보 이상의 지주로 `100리 밖 쫓아내기’ 대상이 돼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면서 “1947년 5월 일가족이 월남할 때도 황해도 해주까지 열차를 탔다”고 말했다.
 또 “당시 열차는 석탄을 때는 열차였고 일반 승객과 몰래 월남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꽤 붐볐던 것으로 기억된다”면서 “열차 속도는 느렸지만 원거리 여행에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소개했다.
 2남 2녀를 모두 키운 원 사무총장은 “북한 고향에는 현재 고모 한 분만 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고향 산천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살아 생전에 경의선이 연결되면 열차를 타고 고향땅을 꼭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향민 중에는 아직까지 생사확인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 수십만에 이르는 현실과 남북 열차 완전 복원의 요원함을 지적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북 5도 중 한 도민회 간부는 “남북 열차는 시험운행이 성공리에 끝난다 해도 철도 교체,전기 공급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아 최종 연결이 언제 이뤄질 지 막막하기만 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실효성도 없는 일회성 이벤트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나 형제,남매 등 혈육의 생사도 모르고 평생을 살다가는 현실 속에서 이런 생색내기 행사보다는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상봉의 확대, 고령자들의 남북 상호방문, 자유로운 서신 교환 등을 먼저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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