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의 지옥 헤매는’ 보통사람들 이야기
  • 이경관기자
‘먹고 살기의 지옥 헤매는’ 보통사람들 이야기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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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돈·몸·길·글 다섯개 주제로 간명하고 정직하게 풀어내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슬프다, 시장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면을 끓이며’ 중)
 소설가 김훈이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이 스친다.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는 오래전 절판된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딘 글과 그 후 새로 쓴 원고 400매 가량을 합쳐 묶어낸 책이다.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밥, 돈, 몸, 길, 글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해 간명하고 정직한 문체로 풀어낸다.
 책 속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과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 속에서 그는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낸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김훈은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라고 표현한다.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나는 살아온 날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의 쓰레기들이 부끄러웠다. 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언어들과 더불어 한 줄의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바다’ 중)
 김훈은 몇 해 전부터 최근까지 동해와 서해 인근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왔다.
 그는 글 속에서 수평선 너머로부터,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그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고 풀어낸다. 그는 파도를 바라보며 많이 헤매였고 그 헤매임 속에서 나아갈 길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김훈은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많은 글들을 버렸다.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바람을 담아.
 사람들은 일상의 피로 속에서도, 언제고 올 나의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한다.
 그러나 김훈은 어제보다는 오늘을 그리고 미래보다는 오늘을 살라고 말한다.
 그는 밥벌이의 고단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힘들지만, 그렇지만 또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오늘’에서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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